성공회대,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성별·장애·성정체성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사용 화장실
학생들 "생리컵 교체 쉽고 트랜스젠더 친구도 편리하게 이용 가능" 환영
해외서도 성중립화장실 확대 설치 추세…일각 "성범죄 가능성" 우려도
전문가 "소수자 위한 선택지 늘리자는 것이 본래 취지…여성 안전은 시스템 보완으로 해결 해야"
장애, 성별, 성정체성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에 설치됐다. 학생들과 인권단체는 "모두의 화장실은 누구나 화장실을 쓰는 당연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이라며 "아직 소수 기관에만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이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성범죄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성공회대는 지난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국내 대학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을 완공했다고 밝혔다. '모두의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 등을 화장실 한 칸에 모두 설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성소수자, 아이 동반 보호자 등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1인 화장실에 가깝다.
성공회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은 약 5평(15.79㎡) 규모로 휠체어 이용자가 보조인 2명이 함께 들어가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만큼 넓다. 화장실 한 칸으로 구성된 공간에는 음성지원 시스템, 자동문, 점자블럭, 각도거울, 유아용 변기커버, 기저귀 교환대, 소형 세면대, 접이식 의자, 외부 비상통화 장치 등이 설치됐다.
남녀, 장애인 기호로 구분된 기존 화장실과 달리 화장실 입구 표지판에도 여성, 남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의미하는 픽토그램 5개가 함께 그려있다. 성별 구분이 명확해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었던 성소수자 등도 눈치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박모(24)씨는 "평소 학교에 아기와 함께 오는 부모님들이 좁은 화장실 칸에서 아이와 들어가 볼 일을 보는 것에 곤란해하거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웠다"며 "저 역시 시험 기간이나 조별과제로 오래 학교에 남아있을 때 생리컵 교체에 애를 먹었는데 세면대가 변기 옆에 생겨 고민을 덜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교는 다양한 학생들이 누구나 불편함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인데, 기초적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면 학교는 누군가에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곳이 된다"며 "점차적으로 다른 건물에도 설치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회융합자율학부에 재학중인 신모(26)씨는 "수업을 같이 듣는 트랜스젠더 친구가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 이용을 어려워해서 5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는 경우를 봤다"며 "기존 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는 곳도 있거나 성별이 다른 보조인이 함께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많아 이들을 위한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신씨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 권리인데,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며 "대만, 프랑스 홍콩의 대학에서는 모두의 화장실이 보편적이고,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흐름이 생겼으면 한다"고 밝혔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중립 화장실'이라고도 불리며, 이미 해외 여러 국가에서 설치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영국은 병원, 이스트미들랜드 공항, 서튼역, 스포츠 시설 등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했고, 미국에서도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이 2015년 백악관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한림대 성심병원, 인권단체 등에만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경계가 없는 화장실은 성범죄가 발생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수도권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최모(21)씨는 "모두의 화장실 설립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남녀 구분 없는 공용화장실에 불법 촬영, 성추행 범죄가 더 잘 일어날까 두렵다"며 "분리된 화장실을 없애고 모두의 화장실만 확산하는 방향은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지학 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모두의 화장실은 그동안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워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고, 물을 마시지 않아 탈수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위해 선택지를 늘려주는 것이지 기존 화장실을 모두 없애 다른 사람들의 선택권을 뺏자는 게 아니다"고 전제하고, "남녀, 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불편하다면 다른 층,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등 성범죄를 우려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자 화장실에서도 범죄가 발생하기 때문에 성별이 분리된 화장실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유럽에서는 남녀가 함께 화장실을 써도 청결이나 성범죄로 인한 갈등이 별로 없는 만큼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공교육, 가해자 처벌 강화 등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안전한 화장실 문화를 만들 수 있을 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