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코로나發 수요 거품 곧 꺼진다"…제조업 위기론 확산


입력 2022.04.22 06:00 수정 2022.04.21 17:45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원자재가 상승, 공급망 교란 속 수요까지 위축되면 '재난적 위기'

자동차, 보복소비‧대기수요 해소되면 공급자 우위 시장 역전

조선, 수주 호황 길어야 2년…후판가 부담에 수주경쟁까지 겹악재 우려

정유‧화학, 고유가 속 수요 위축 우려…IMF 주요국 경제성장 전망 하향

제조업 위기 확산. ⓒ게티이미지뱅크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교란 속에서 그나마 제조업을 지탱해주던 소비시장 마저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주요 업종의 수요 확대가 경기 호황을 배경으로 한 선순환이 아닌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라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이뤄진 것인 만큼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조선, 정유‧화학 등 대표적인 제조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현재의 제조원가 상승‧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수요 부진까지 더해질 경우 최악의 불황이 닥칠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현재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생산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차종이 계약 후 수 개월씩 대기가 걸리고, 일부 인기 차종은 계약 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형편이다.


세계적인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난에 와이어링 하네스 등 핵심 부품도 해외 협력사 공장 가동차질로 수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제조원가가 치솟은 상황에서 그나마 수요가 뒷받침돼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형성되면서 잇달아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에서 근로자가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문제는 지금의 공급자 우위 시장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시장 수요는 장기간 이어진 공급차질에 따른 대기수요와, 코로나19 상황에서의 보복소비를 바탕으로 한다. 즉, 정상적인 시장 시스템 하에서의 수요 확대로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가 한 번 구매하면 장기간 사용하는 ‘고가의 내구재’라는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일정 시기에 수요가 몰리면 재구매 시점까지 간격이 길다. 주요국의 경기 악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 우려도 크다.


국내 시장의 경우 7월부터 이뤄지는 개별소비세(개소세) 감면 일몰도 수요에는 위협 요인이다. 정상 세율 5%인 개소세는 2018년 7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3.5%로 감면됐고, 2020년 1~2월 5%로 환원됐다가, 그해 3월부터 6월까지 1.5%, 이후 현재까지 3.5%의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무려 4년 가까이 적용됐던 개소세 감면 혜택이 사라진다면 소비자에겐 큰 폭의 가격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출고가가 오른 자동차에 더 높아진 개소세까지 추가된다면 수요 위축이 불가피하다.


공급망 교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요까지 줄어든다면 자동차 업계에는 전방위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대기수요가 몰렸다고 마냥 좋아할 시기가 아니다”면서 “지금의 시장 수요는 그동안 만들어 팔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파는 셈이고, 생산 정상화 시점이 요원한 상태에서 가격까지 오른 상태라 대기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면 길고 긴 불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현대중공업

길고 긴 불황의 끝에 간만에 호황을 맞은 조선업계도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수주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후판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태라 높은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은 그마나 선박 수요가 뒷받침돼 원자재가 상승을 선가에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 기존 수주한 선박 인도가 시작되면 업황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특히 조선 불황 시기에 고착화 된 헤비테일(선수금과 중도금을 적게 받고 최종 인도시 나머지 대금을 받는 형태의 계약) 방식 수주가 조선 호황기에도 관행으로 자리 잡으며 인도 전까지는 원자재가 상승 부담을 조선사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선주들의 발주가 잦아들고 수주 경쟁이 심화되면 조선업체들은 호황의 단맛을 채 느끼기도 전에 다시 불황에 늪에 빠질 우려가 크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선주사들도 과거 조선‧해운업 공급과잉 시기의 경험이 있는데다, 대형 조선사간 수주 경쟁 상황이 해소된 게 아니기 때문에 해운 업황이 좋더라도 공격적으로 발주에 뛰어들지는 않는다”면서 “여전히 헤비테일 방식 수주가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대규모로 이뤄진 수주물량이 내년부터 시장에 풀리면 조선 업황 사이클이 다시 하향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고, 원자재가 상승 부담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수요가 감소해 수주경쟁이 심화된다면 조선사들은 실적 악화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전경. ⓒSK이노베이션

유가급등과 제품 수요 확대 속에서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정유‧화학업계도 소비시장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정유업계의 호실적은 유가급등 이전 구매했던 원유의 재고평가이익과 전방산업 수요 확대에 따른 정제마진 확대였다.


하지만 고유가가 지속되며 앞으로는 재고평가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수요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신냉전 구조 형성과 중국의 상하이 봉쇄, 코로나19 시기 이전부터 계속돼온 미중 패권경쟁 등 거시경제 악화 요인이 산적해 있다.


다양한 전방산업의 기반이 되는 정유‧화학 산업은 거시경제 지표에 민감하다. 전세계 경제성장 둔화가 현실화될 경우 각종 소비재 구매가 줄면서 연료유나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을 3.6%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1월 전망치인 4.4%보다 0.8%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주요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일제히 3개월 전보다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경우 4.8%에서 4.4%로, 미국은 4.0%에서 3.7%로, 일본은 3.5%에서 2.4%로 하향 조정됐고, 유로존은 3.9%에서 무려 1.1%포인트나 낮아진 2.8%로 전망됐다. 한국도 3.0%에서 2.5%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졌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전방산업 수요가 위축되고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다 급락하면 정유업계는 마진 악화와 재고평가손실이라는 두 가지 악재의 직격탄을 맞는다”면서 “장기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견딜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