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 강조해 온 추 부총리
첫 재정 정책 ‘추경’ 재원에 관심
초과 세수 활용 국채 없이 편성
‘재정 준칙’ 법제화 속도 높여야
윤석열 정부가 출범 1호 정책으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채발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임 정부에서 급증한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재정 건전성에 대한 새 정부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되는데, 앞으로도 이런 정책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2일 올해 53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초과 세수 일부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업 제한 조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추경 재원으로 쓰고 일부는 국채 상환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성 의장은 이날 오전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추경 재원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7조원 정도 예산을 줄였고, 8조원은 기금을 활용했다”며 “나머지는 53조원의 추가 세수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과 세수 가운데 소상공인 지원을 제외하고도) 9조원 정도 돈이 남아서 1000조원아 넘는 국채 상환으로 돌려 지금 50.1%의 국가 부채 비율을 49.6%로 낮추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국채와 차입금 등 만기가 정해진 확정부채와 공무원연금 등 향후 지급해야 할 비확정부채를 더한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 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20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정부가 의결한 2021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부채는 전년보다 241조7000억원 늘어난 2196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확정부채만 따로 떼서 계산하는 국가채무도 크게 늘었다. 지난달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발간한 ‘2022 경제·재정수첩’에 따르면 지난해 국채는 967조2000억원으로 2020년보다 120조6000억원(14%) 증가했다. 12일 현재 기준으로는 1024조235억원에 이른다. 예정처는 2025년 국가채무가 1415조9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50.1%를 기록했다. 2025년에는 58.5%로 늘어나고 2040년에는 103.9%로 국내총생산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문제다. 우리나라의 2019년~2021년 국가채무 연평균 증가율은 14.4%다. GDP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 가운데 캐나다(17.5%)와 미국(14.8%)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동안 지난 정권에서 국채 증가를 문제로 지적하며 재정 건전성 제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새 정부 초대 경제 내각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대표적인 재정 건전성 수호론자다.
추 부총리는 국회의원 당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5%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개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부가 제안한 재정준칙과 유사한 내용이다.
그는 법안 발의 당시 “무분별한 재정확대로 국가채무비율이 급상승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자금 회수, 국채 매도로 시작해 원화가치 하락과 주가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부총리 내정자 시절 기자간담회에서도 “국회와 정부가 함께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걸 규율화해야 한다”며 “재정준칙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2차 추경에서 국채를 얼마나 발행하게 될지 관심사였다. 윤 대통령 공약대로 50조원의 추경을 편성할 경우 국채발행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차 추경에서 국채를 발행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예산을 36조원으로 압축한 데다 무엇보다 53조원이 넘는 초과세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본예산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7조원가량 재원을 마련한 점과 세계잉여금 등 가용재원이 8조원 정도 발생한 점도 주요했다.
2차 추경만 놓고 보면 추 부총리는 재정 건전성 강화 약속을 지켰다. 초과세수라는 예상치 못한 재원이 발생한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9조원의 국채까지 갚으며 나랏빚을 줄였다. 새 정부 재정 정책의 첫 단추를 잘 꿰맨 셈이다.
다만 추경호 경제팀이 마주한 국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문제는 물론 코로나19도 끝나지 않았다. 계속 떨어지는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려야 한다. 앞으로도 나랏돈을 지출할 일이 잔뜩 쌓여있다는 의미다.
정치권이나 청와대의 재정지출 요구 압박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전임 홍남기 부총리는 정치권과 청와대 압박에 번번이 밀리면서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 ‘홍백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은 전례가 있다.
추 부총리 상황이 홍 전 부총리보다 낫다고 보긴 힘들다. 김대기 청와대 정책실장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모두 경제 관료 선배들이다. 거대 야당과도 상대해야 한다. 추 부총리가 경제 정책 중심축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자칫 ‘추두사미’, ‘추백기’란 용어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재정준칙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미국은 특정 분야 재정지출 확대 법안 발의 시 재원조달 마련 방안 제시를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며 “우리도 해외 제도를 참고해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역시 “재정 정책은 그간 확대 재정 일변도로 오면서 만성화된 연간 100조원대 적자를 줄이는 게 급선무가 됐다”며 “다음 단계로 재정준칙 도입, 재정관리 기구 발족, 예산지출 개혁 등 부채 관리를 어떻게 할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출항 추경호號⑤] 문 정부 최대 실책 부동산…세제 개편으로 ‘정상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