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작물 피해 6570억원 절감
지난해까지 17만5836개 보급
연간 1억8000만원 수입대체 효과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농촌진흥청에서 개발‧보급 중인 ‘원예작물 바이러스 진단도구(진단키트)’가 영농현장에서 2분이면 감염 여부 확인이 가능해 농작물 피해 예방과 안정 생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간 진단키트 보급에 따른 바이러스병 피해 절감액은 약 6570억원에 달한다. 진단키트 국산화로 연간 1억8000만원 수입대체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농촌진흥기관을 통해 전국에 보급하는 원예작물 바이러스 진단키트 보급 사업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원예작물의 바이러스병은 아직 치료 약제가 없고 전염 속도가 빨라서 한 번 걸리면 자칫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따라서 조기 진단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작물을 신속히 제거해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 방법이다.
조인숙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특작환경과 농업연구사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보급하고 있는 진단키트는 영농현장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사용이 가능하다”며 “작물 잎을 따서 으깬 후 즙을 진단키트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 진단키트에 한 줄이 나타나면 음성, 두 줄이 나타나면 양성이다. 2분 이내에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수박 등 10개 작물 바이러스 진단…정확도는 95%
진단키트는 수박, 오이, 멜론 등 모두 10개 작물에 발생하는 바이러스 17종을 진단할 수 있다. 바이러스 진단 정확도는 95% 이상이다.
지난 2007년 1080점을 시작으로 전국에 무상 보급한 바이러스 진단키트는 지난해까지 총 17만5836개에 이른다. 올해도 1만8000점을 보급했다.
특히 올해 보급 물량 중에는 고추에 문제가 되는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 고추모틀바이러스, 고추약한모틀바이러스 4종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다중진단키트’가 포함돼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 다중진단키트는 단일진단키트를 이용할 때보다 진단 시간을 6분 단축할 수 있다. 비용도 17% 낮췄다.
바이러스 진단키트 개발‧보급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도 크다. 진단키트 바이러스병 피해 절감액은 2007년 40억원을 시작으로 2010년 264억원, 2015년 605억원, 2020년 696억원 등 지속해서 늘고 있다. 지난 14년간 절감액을 합하면 약 6570억원에 이른다.
수입에 의존하던 진단키트 국산화를 통해 얻은 수입대체 효과는 연간 1억8000만 원에 달한다. 특히 평균 1만3000원 정도 되는 외국산 진단키트와 비교해 국산 진단키트는 3000원 정도로 비용을 77% 가량 절감시켰다.
경기 성남에서 10년째 330㎡(100평) 규모로 토마토를 재배하는 한 농가는 “작년에는 토마토반점위조 바이러스를 초기에 발견하지 못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수확도 거의 못했다”며 “올해는 진단키트 덕분에 바이러스병 걱정도 덜고 피해도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사는 “앞으로 채소는 물론 화훼‧약용 작물까지 바이러스 진단 범위를 넓혀 나갈 계획”이라며 “바이러스병 예방은 신속한 진단이 생명인 만큼 좀 더 빠르고 간편한 키트를 지속해서 개발‧보급해 농가 피해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17세기 튤립 투기 열풍…몰락 원인은 ‘바이러스’
17세기 유럽은 튤립 투기 열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슈화 된 비트코인처럼, 튤립 구근이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처로 알려져 자본이 몰리면서 사회적 폐단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진 튤립은 사실은 원산지가 중앙아시아와 터키 지방이다. 네덜란드에는 16세기 중반에 전해졌다. 당시 중계 무역과 선진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세계 최고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던 네덜란드 무역상을 중심으로 한 투자자들이 다양한 색상을 가진 튤립에 관심을 보인 것이 투기의 시발점이 됐다. 실제로 당시 튤립 구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튤립 구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일반 서민들도 투기에 뛰어들었다. 노동자 평균 연봉이 200~400길더 수준이던 1736년, 최고 등급 튤립 구근 1개 가격이 3000길더에 이르렀다 하니, 그 광풍을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튤립은 색과 희소가치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값이 매겨졌는데, 흰색 꽂에 진홍색 줄무늬를 가진 구근은 ‘영원한 황제’라는 뜻의 ‘센페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로 불리며 가장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1737년 경제 거품은 절정에 다다랐고, 정부 개입으로 겨우 진정된 경제 거품은 많은 사람을 절망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세계 최강 경제력을 자랑하던 네덜란드 경제 기반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바로 튤립이었다.
1892년 러시아 과학자 이바노프스키에 의해 바이러스가 식물에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진 이후에야 ‘튤립피버’를 불러일으킨 희소한 튤립꽃 색 원인이 ‘튤립브레이킹바이러스(Tulip breaking virus; TBV)’였음이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미세한 생명체 중 하나인 바이러스, TBV가 그토록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김현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 “1990년대 후반 이후, 농작물 바이러스 병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200여 종 식물 바이러스 발생이 보고됐다”며 “1996년 수박에 발생해 크게 문제가 된 오이녹반모자이크바이러스(CGMMV)는 경제적 이유로 토지 사용료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서 증식한 종자가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조기 발견이 농사 성패 가른다
몇 해 전, 수박 모자이크병에 대한 괴담으로 인터넷상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했다. 이 바이러스에 걸린 소용돌이 모양의 수박을 먹으면 구토설사를 일으킨다는 잘못된 정보로 소비자 뿐 만아니라 많은 수박재배 농가들이 경제적 피해를 보게 됐다.
수박 소용돌이 모양은 원래 정상 수박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태좌’라고 하는 무늬다. 수박씨가 있는 자리에서 만들어진 과육 부분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수박 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오이녹반모자이크바이러스(CGMMV)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박은 과육이 짙은 적색을 띄고 물컹하게 변질되는데 변질된 수박을 먹으면 구토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농가에서는 수박을 출하하기 전에 바이러스병에 걸린 수박을 골라서 폐기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판매하는 선홍색의 단단한 과육인 수박 제품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하지만 간혹 변질된 수박이 유통될 수도 있으니 주의는 필요하다.
오이녹반모자이크바이러스는 1998년 중국에서 채종한 수박 대목용 박 종자로부터 전염돼 전국적으로 463ha에 발생해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힌 사례가 있다. 그 이후 농진청에서는 농업 현장에서 바이러스를 바로 진단 할 수 있는 기술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원예작물 바이러스 진단키트는 시중에 판매되는 임신진단키트와 유사한 원리다. 최근에는 ‘코로나 진단키트’와 같은 방식이다. 바이러스 항원과 항체 결합을 금나노입자를 이용해 붉은색으로 나타나게 하므로 붉은색 두줄이 보이면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으로 판단한다. 개발한 바이러스 진단키트는 농작물 재배 현장에서 누구나 손쉽게 2분 이내에 바이러스 감염 결과를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조 연구사는 “최근 기후변화와 농작물 시설재배 면적 확대로 농업환경이 급변하면서 이에 따른 병해충 발생이 증가되고 있다”며 “이 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은 연간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식물 바이러스병 치료 약제는 세계적으로 아직 개발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 연구사는 이어 “현재로서는 조기 예방만이 최선의 방제대책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신속히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일년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며 “우리 인간이 아프면 병원에서 진찰을 받듯이 농작물도 이상 증상이 나타날 때 진단이 정확히 이뤄지면 바이러스뿐 아니라 병해충 확산을 미연에 방지하고 또한 이상 증상에 대한 잘못된 진단으로 인한 무분별하게 뿌려진 농약의 오남용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월 26일 [新농사직썰㉟]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