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봉쇄 기간 동안 인터넷 최고 유행어로 떠올라
극단적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환멸 느껴 中 탈출 모색
지난 5월 이민 관련 검색 건수 전달보다 300% 급증
中 당국, 자국민의 불필요한 출국 엄격히 제한하기로
중국에서 ‘룬쉐’(潤學·runology)가 화두로 등장했다. 극단적인 코로나19 방역정책인 ‘칭링팡전’(淸零方針·zero Covid policy)에 숨 막혀 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 단어가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현상을 불러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윤’(潤)은 중국어발음 로마자표기법으로 하면 ‘run’이다. ‘룬’으로 읽지만, 뜻은 영어 run과 같은 ‘도망치다. 탈출하다’ 쯤으로 해석된다. 룬쉐는 ‘선진국의 높은 복지를 누리기 위해 국내 환경을 개선하는, 곧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코로나 정책 실시로 질식할 것만 같은 중국에서 어떻게 하든 벗어나려고 해외 유학이나 이민을 시도하는 것을 뜻한다.
홍콩 명보(明報)는 이달 초 ‘상하이 펑청’(封城·봉쇄) 해제 이후 ‘제로코로나’ 정책을 견디다 못한 중국인들이자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해외 유학이나 이민을 모색하는 ‘룬쉐’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지난 19일 4건의 기사를 통해 심층 분석했다. 중국 내에서 오미크론 변이를 칭링팡전으로 대응하는 데 대한 의문을 품는 중국인들이 급증하면서 도시봉쇄가 일상화된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려는 중국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명보는 “‘룬쉐’는 이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며 “상하이 봉쇄 기간에 이민에 대한 문의가 평소보다 10배 이상 늘어났다. 일부 학부모들은 국제학교 교사들이 중국을 떠날 것을 우려해 미리 이민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명보에 따르면 2018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상하이로 돌아왔던 양(楊)모씨는 오는 9월 전에 이민을 떠나기 위해 태국 유학 비자를 신청했다. “(중국은) 불확실성이 너무 큽니다. 아파트단지 안에서나 주민 단체대화방에서는 매일 다툼이 벌어져요. 다바이(大白·방역요원)들이 수시로 현관문을 쾅쾅 두드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지요.” 양씨가 태국행을 서두르는 것은 3월 겪었던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당시 아파트 내에서 각혈을 하던 한 여성 확진자가 격리시설에서 수용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파트 정문 앞 길바닥에 버려졌다. 이를 본 주민들은 확진자가 돌아다니며 코로나를 전염시키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해 환멸을 느꼈다는 그는 “주민들에게는 최소한의 동정심도 없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상하이에 품었던 애착이나 소속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아파트의 일부 젊은이들은 봉쇄가 풀리자마자 고향이나 홍콩으로 떠났다. 양씨 역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만 상하이를 미련 없이 떠날 생각이다.
상하이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는 리키(Ricky)씨도 이민을 고려 중이다. “지금의 상하이는 어릴 적 실무를 중시하는 이곳 출신 간부들이 다스리던 그런 상하이가 아닙니다. 외지에서 온 간부들로 채워져 이미 특색 없는 베이징의 한 지역구로 전락한지 오래됐어요. 중앙에서 파견된 간부가 뉴스에서는 ‘상하이 보위전’을 외치지만 막상 현장에서 이들을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허황된 말만 늘어놓지요.” 리키씨는 “상하이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고강도 봉쇄를 겪으며) 상하이가 중국의 한 도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줬다”고 했다. 봉쇄 직전까지 PCR(핵산)검사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정밀 방역을 자랑했던 상하이 시민의 자부심은 봉쇄 두 달 만에 온데간데없어졌다는 것이다. 당뇨·고혈압을 앓는 외조부모의 약을 구하기 위해 병원 친구에게 부탁하는 등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지만 끝내 실패해 외조부모가 약을 끊어야 했다는 그는 “외조부모만 안 계시면 곧바로 이민을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이민 관련 검색이 급증했다.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 따르면 지난 5월 ‘이민’ 검색량은 전달보다 300% 늘어났다. 지난 4월 바이두의 ‘캐나다 이주요건’에 관한 검색량은 전달보다 2846%, ‘어느 곳으로 출국하는 게 좋은가’ 검색량은 2455%나 치솟았다. 이민 검색이 급증한 지역은 상하이와 톈진(天津), 광둥(廣東)성이다. 고강도 봉쇄조치가 취해진 곳들이다. 이민 목적지로 많이 검색된 나라는 호주와 미국, 캐나다 등이다. 미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중국인 엔지니어는 “대학졸업 후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기회를 찾으려고 한다”며 “중국에서는 개인들이 너무 무력하고 개인의 권리가 존중 받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부자들도 탈중국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미·중 합작 자산관리업체 비안궈지(彼岸國際·Beyond Internationa)에 따르면 기존 고객은 컨설팅·투자 위주였으나 최근엔 이민을 문의하는 학부모가 증가했다. 잔후이민(詹惠敏·Jenny Zhan)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미국 EB-5 비자의 대기줄이 긴데 모두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냐고 묻는다”며 “이민을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도 이젠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B-5 비자는 최소 90만 달러(약 11억 7000만원) 투자가 필요한 이민프로그램으로 돈 많은 중국인들이 많이 신청했다. 글로벌 이주 중개업체인 헨리&파트너스는 ‘백만장자들이 다시 이주한다’는 보고서에서 올해 안에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자산가 중 중국인 1만명, 홍콩인 3000명이 이민을 떠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와중에 상하이 봉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자양칭(賈揚淸) 알리바바그룹 기술담당 부총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근무한 뒤 알리바바에 합류했던 자 부총재는 미국에 도착한 뒤 “인맥을 통해서 새벽 4시 공항에 도착해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며 “상하이에서 마지막 72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페이스북에 탈출기를 올렸다. 이를 본 중국 네티즌들이 그가 ‘인맥’을 동원해 방역수칙을 어기고 상하이를 빠져나갔다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특혜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중국 공안부 산하 이민관리국은 지난달 초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Wechat)을 통해 자국민의 불필요한 출국을 제한하겠다며 출입국 관련증서 발급을 엄격하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과 물자를 통해 코로나19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데 국경관리에 초점을 맞춰온 중국 당국이 자국민의 출국제한방침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국이 ‘불필요한 해외출국’을 제한대상으로 거론했지만 ‘필요한 출국’과 ‘불필요한 출국’의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일반 중국인들의 출국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질 전망이다.
특히 입국과 달리 출국은 중국 내부의 코로나19 방역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당국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무슨 병에 걸린 것이냐, 북한도 이렇지는 않다’고 꼬집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불필요하게 출국하지 말고, 불필요하게 도시를 떠나지 말고, 불필요하게 집 문밖에 나서지 말고, 불필요하게 숨을 쉬지 말고, 불필요하게 태어나지 말라’는 글이 웨이보에 나돌기도 했다. 당국이 자국민이 해외의 ‘위드코로나’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고 이민까지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그동안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경제·사회발전 환경을 구축해 왔다고 내부적으로 선전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룬쉐’ 현상이 과장됐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중국의 한 이민중개업자는 “상하이 봉쇄기간 접수된 이민 문의가 평소 10배로 증가했지만, 봉쇄가 풀린 이후에는 평소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2020년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봉쇄, 201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의 개헌(국가주석 임기제한조항 폐지)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글/ 김규환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