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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엘리자벳’ 인맥 캐스팅 논란…뮤지컬 시장, 곪았던 상처 터졌다


입력 2022.06.25 14:00 수정 2022.06.25 14:0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뮤지컬계 "스타캐스팅에 지나치게 의존...제작 환경 돌아봐야"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


이 짧은 글 하나가 뮤지컬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지난 13일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을 발표한 직후 뮤지컬 배우 김호영이 SNS에 올린 글이다. 뮤지컬 여배우 티켓파워 톱으로 꼽히는 옥주현은 이 글을 쓴 김호영과 네티즌 1명을 고소했다. 게시글 속 ‘옥장판’이 자신을 지칭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MK뮤지컬컴퍼니, 뉴시스

사건이 고소전으로까지 번지자 1세대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최정원과 연출·음악감독 박칼린은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 “뮤지컬의 정도(正道)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이 동참해달라” 등의 내용이 담긴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에 김소현·정선아·신영숙·차지연·정성화·최재림 등 유명 배우들이 잇달아 지지 의사를 표했고, 논란이 업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다.


옥주현이 실제로 캐스팅 과정에서 월권을 행사했는지는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EMK뮤지컬컴퍼니는 캐스팅 논란에 대해 한 차례 “옥주현 배우의 어떠한 관여도 없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음에도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24일 또 다시 입장문을 내고 “라이선스 뮤지컬 ‘엘리자벳’은 원작자의 승인 아래 출연진을 공정하게 선발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옥주현 역시 논란이 커지고, 선배 배우들의 호소문이 나오면서 자신의 SNS를 통해 김호영에 대한 고소 취하 의사를 밝히면서 사과하면서도 캐스팅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선배들의 호소문을 읽은 뒤 제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고 반성했다. 소송과 관련한 소란들은 제가 바로잡도록 하겠다”며 “오디션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폄하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업계에선 단순히 이번 논란이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타 캐스팅’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뮤지컬 제작 환경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보다 캐스팅이 흥행을 좌우하고, 여기에 수익을 내야하는 제작사가 휘둘릴 수밖에 없는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0년 연 100억원 이하 규모(매출액 기준)에서 20여년 만에 연 4000억원 가까운 규모로 급성장했다. 관계자들이 입 모아 말하듯, 20년이란 시간 안에 이룬 성장세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스타 캐스팅’, 즉 특정 배우에 의존적인 구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뮤지컬계는 ‘뮤덕’(뮤지컬 덕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돌 시장 못지않은 ‘팬덤형’ 성장을 이어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뮤지컬 관계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작품을 올리고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 국내에선 무조건적으로 스타 캐스팅이 필요한 상황이다. 때문에 티켓 파워가 막강한 배우의 입김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제작사는 이를 무시하기 쉽지 않다. 이것이 현재 한국 뮤지컬 업계의 현실”이라며 “이번 옥주현과 관련한 이슈가 터진 것도 결국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한 제작사, 한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현재 뮤지컬 업계는 짧은 시간 안에 급성장했고, 업계에선 현재 정체되어 있는 성장세를 뛰어넘어 지속 성장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뮤지컬의 독립장르화’를 오랜 숙원 사업이 됐던 것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업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뮤지컬의 질적, 정책적 성숙과 동시에 스타마케팅을 통한 양적 팽창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거세다. 1세대 배우들이 낸 호소문에는 뮤지컬 업계가 나아 길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각자 자기 위치와 무대에서 지켜야 할 정도(正道)가 있다”는 것이다. 뮤지컬계의 정도(正道)를 위해 모든 뮤지컬인들이 동참해야 할 때다.


옥주현은 물론, 모든 배우들이 이번 사건을 더 성숙한 뮤지컬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반성의 기회로 삼길 바란다. 물론 이번 호소문을 발표하거나, 지지한 1세대 배우 등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 역시 이런 기형적 시스템을 주도했거나, 방관해온 뮤지컬 업계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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