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 플랫폼 정책에 권리 침해 주장
“중소 핀테크, 빅테크와 경쟁 밀려나”
중소 핀테크 업체들이 대기업의 무분별한 아이디어 도용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핀테크 혁신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도 금융당국의 사후 관리가 미흡해 아이디어를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적금 비교 및 분산예치 플랫폼 ‘저축하나로’ 창업자인 최혜윤 씨비파이낸셜솔루션 대표는 18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예·적금 비교 플랫폼과 관련해 특허를 갖고 있고 제일 먼저 금융당국으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도 지정받았지만 이러한 권리를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기존 규제로 실현되기 어려울 경우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주는 제도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6일 금융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여러 금융사 예금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혁신서비스로 지정해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예금상품 중개는 관련 법 근거가 부족해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빅테크 기업들이 예적금 비교·중개 플랫폼 사업을 할 수 있게 추진하고 있고 9개 플랫폼 업체가 이에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혜윤 대표는 중소 핀테크 기업이 현실적으로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이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이러한 스탠스가 가장 먼저 아이디어와 특허를 낸 기업을 사실상 방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혁신을 지원하겠다며 제도를 만들어 놓고 중소기업의 선행 아이디어는 무시한 채 대기업에게 사업 기회를 주는 금융위 결정에 유감”이라며 “어렵게 내놓은 아이디어를 보호해주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서 함께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중소 핀테크들은 대기업에게 아이디어를 무분별하게 도용당해 폐업위기에 몰리거나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한 상태”라며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의 특허나 배타적 권리는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저축하나로’는 현재 은행 100여곳의 2000개가 넘는 수신상품의 금리·연체율·영업이익 등이 비교가능한 플랫폼이다. 씨비파이낸셜은 지난 2008년 관련 금융상품 공동 비교 판매 방법으로 특허를 등록했고 2020년 2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연장을 받았다.
최 대표는 중소기업 아이디어를 보호해주는 법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따르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사업자는 지정기간이 끝난 후 인허가를 전제로 일정기간 독점 판매권인 배타적 운영권을 가진다. 다만 금융당국은 해외에서보 비슷한 서비스가 없는 등 좁은 의미의 혁신성만 인정해 배타적 운영권을 부여한다. 아직까지 배타적 운영권을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그는 “비슷한 아이디어를 혁신금융서비스로 또 인정할 시 특허권 침해 및 분쟁 우려가 매우 높다”며 “특히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특례를 인정해줄 때는 중소기업 특허권 보호 조항을 부가 조건으로 명시해 상생할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금융당국의 사후 관리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를 대출에 적용할 수 있는 사업으로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받은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지정 이후 기존 신용정보사들도 우리와 유사한 평가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수십년 경력과 자본력, 시장점유율 가진 기존 업체가 저가 혹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핀테크 업체 대표도 “혁신금융의 취지상 지정을 했으면 제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도 우후죽순 비슷한 서비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 무력감을 느끼고 동력을 잃는다”고 토로했다.
금융위는 이에 대해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 규제로 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테스트해 보자는 취지이며, 배타적 운영권을 우선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자는 취지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배타적 운영권을 엄격히 해석하고 있고 인정받은 사례도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자리를 잡은 대출 비교 플랫폼도 여러 기업에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해줬기 때문에 중소 핀테크 업체도 뛰어들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해당 기업도 예금 중개 관련 법에 대해 특례를 받은 게 아닌 만큼 배타적 운영권 주장을 인정받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