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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㊷] ‘곡성’' 이후 간만의 스릴, ‘멧돼지사냥’


입력 2022.08.27 07:49 수정 2022.08.27 07:4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호사다마, 비극은 호재의 반보 뒤에 따라온다 ⓒ이하 드라마 '멧돼지사냥' 홈페이지

귀신을 봐야 무섭고 아찔한 카체이싱을 펼쳐야 스릴 넘치던 시대는 갔다. 얼마든지 이야기 설정과 전개로 관객을 공포와 긴장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드라마나 영화가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쉽게 되지도 않는다. 관객과 심리적 유대관계를 맺어야 같은 장면이라도 더 무섭고, 아직 무엇이 시작되기도 전에 불안과 두려움을 스스로 펌프질 하며 긴장을 배가시킨다. 일단 공포의 도가니 안으로 끌어 들이면 한결 수월한데, 그렇게 하기가 간단치 않다.


영화 '곡성'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한국영화 사상 무섭기로 소문난 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다. 물론 피도 뿌려지고 잔인한 최후를 맞이한 주검들도 즐비하긴 하지만, ‘곡성’이 끔찍이 무서웠던 건 심리적으로 온전히 우리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영향이 크다.


보는 동안에도 나로서는, 아니 우리가 똘똘 뭉쳐도 도저히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운 존재에 치를 떤다. 이야기가 끝나 가는데도 이 악마는 유유히 또 어디론가 떠나가니 ‘완패’의 낭패를 맛본다. 누군지 정체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나와 우리는 이미 당했고, 당했지만 복수는커녕 포획도 못한 채 놓치고 만다. 그 놈은 어디선가 또 우리 인간을 쉽게 농락하고, 이웃과 친구와 가족과 우리의 공동체를 헤집고 유린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함이 공포를 키운다.


알 수 없다는 것, 불확실의 공포. 분위기만으로 스산함을 자아내는 배우 예수정 ⓒ

영화 ‘곡성’ 이후 오랜만에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맛본 작품이 있으니 드라마 ‘멧돼지사냥’이다. 그 무서움과 두려움이 ‘곡성’보다 더하다고 모두가 느끼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선 더욱 큰 낭패와 씁쓸한 공포에 직면할 수 있다.


‘멧돼지사냥’과 ‘곡성’은 과정은 다르지만 같은 결과의 공포를 체감하게 한다. 바로 인간의 나약함이다. 비단 히어로 영화뿐 아니라 재난영화들, 하다 못 해 멜로에서도 우리는 어떠한 난관도 헤치고 나아가고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을 것처럼 인류를 표현한다. 그러나 두 작품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미약하고 실수하고 의심하며 일을 그르친다.


개인적으로 ‘멧돼지사냥’이 더 무섭다. 그래도 ‘곡성’에서는 인간을 유혹하고 인간사회를 망가뜨리는 적이 초월적 힘을 지닌 악마이기나 하지만, ‘멧돼지사냥’에서는 나와 가족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인간사회 내부에서 균열이 생기고 균열 사이로 파고든 질투와 의심으로 파국을 잉태한다. 이보다 지리멸렬한 인간이기도 어렵다.


오늘만 같아라. 이 자리 모든 이의 바람이었을까 ⓒ

‘멧돼지사냥’의 조범기 작가와 연출자 송연화는 도시보다는 집단공동체 성격이 강한 시골을 배경 삼아, 모두의 동정 대상이었던 한 가족을 로또 1등 당첨이라는 동경의 대상으로 둔갑시켜 균열을 만들고, 여기에 실수와 착각 그리고 우발적 살인과 의심을 지렛대 삼아 균열의 아가리를 더욱 벌린다.


한 마을에서 일어난 큰 호재와 끔찍한 불행을 통해 이에 맞닥뜨린 인간 개별들의 셈법과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이보다 더 눈을 질끔 감아 보고 싶지 않은 공포는 드물 것이다. 바로 나이기도 한 사람이 이기심에 의해 저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게 두려운데,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게 끔찍하게 무섭다.


극본과 연출의 의도를 놀라우리만큼 실감나게 펼쳐낸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순히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연기를 하면 배우 마음에 품은 열의를 넘어 극의 진심이 이토록 절절히 전해 오는지 경탄이 일 정도다. 한두 배우의 열정만으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모든 배우가 각자 열심히 했다고 얻어진 결과도 아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 이상임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열연이고 명연기다.


박호산의 깊이는 어디까지인가 ⓒ

배우 박호산은 그 중심에서 중심축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에게로 모든 배우들의 에너지가 몰리고 그를 통해 태풍이 되어 휘몰아쳐 나간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후 언뜻 언뜻 묻어 나왔던 혀 짧은 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도 반갑다. 드라마 ‘커피 한잔 할까요?’와 마찬가지로, 박호산은 작품 고르는 눈이 좋고 자신이 힘을 보탬과 동시에 자신을 빛내는 역할일 때 더욱 멋지다는 걸 확인시켰다.


자주 보고 싶은 배우, 김수진 ⓒ

박호산이 연기한 영수의 아내 채정 역의 배우 김수진은 드디어 만개했다. 드라마 ‘미스티’에서 주연배우 김남주의 친구 역으로 등장해 주목 받은 게 벌써 4년 전, 이후 승승장구를 기대했는데 도약하지 못해 아쉬웠다. 드디어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을 펼쳐 보일 기회를 만났고, 김수진은 주저 없이 쏟아냈다. 박호산뿐 아니라 함께 출연한 어느 배우와 호흡을 맞추든 그저 아이를 잃을까 두려워 벌벌 떠는 엄마였고, 그를 막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서운 인간이었다.


군저리 명배우 맛집 ⓒ

최고령 예수정 배우에서 젊디젊은 이효제와 이민재까지 흠잡을 데 없는 연기들을 모든 출연 배우가 해낸 것은 물론이다. 이장(유순웅 분)에서 마을 주민(곽자형 등), 경찰(황재열 분 등)까지 모두가 생활 같은 연기를 과시해 누구를 더 누구를 덜 평가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한 배우를 짚자면 진국 역의 이규회다. 드라마 ‘괴물’ 때 발산했던 연쇄살인마 기운의 영향인지 불안이 의심을 부르고, 의심이 비극적 사건을 부르고, 비극이 다시 불안과 의심을 부르는 순환의 고리에 넉넉히 공포를 보탠다. 의뭉스러운 말투와 찡그린 미간 하나면 보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고도 남는다.


먼저 본 많은 이가 “이것이 웰메이드의 정석”이라고 입을 모으는 명작 ‘멧돼지사냥’. 지상파 MBC에서 전파를 탈 때 놓쳤다면 인터넷TV 웨이브(wavve) 등에서 볼 수 있다. 봤어도 다시 봐도 재미있다. 결말과 반전을 알고서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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