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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하나의 마법…님에서 남, 미움과 마음 [다시 보는 명대사⑩]


입력 2024.08.25 12:56 수정 2024.08.25 23:0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미음과 마음의 관계 ⓒ방송 화면 갈무리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있는 사람도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아…… 인생!”


조운파 작사·작곡의 명곡, 가수 김용임이 부른 노래 ‘도로남’의 가사다. 곡조도 귀에 쏙쏙 들어오지만, 가사의 철학적 깊이가 노래를 더욱 명품으로 만든다. 노래를 들었을 때의 머리 한 방 맞은 깨달음,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작품’으로 다가서게 하는 대사를 드라마 ‘엄마친구아들’(극본 신하은, 연출 유제원, 제작 스튜디오드래곤·더모도리)에서 만났다, 그것도 겨우 2회에서.


남이던 사람이 점 하나 떼니 님이 되는 것도 인생, 떼려 해야 뗄 수 없을 것처럼 하나였던 님인데 점 하나 붙이니 도로 남이 되는 것도 인생. 님에서 남이 되어 울고 있는 사람도, 생판 남이었는데 님이 된 복에 겨우 웃고 있는 사람도 모두 우리의 모습인 인생. 너무 기가 막혀 누가 심술부린 장난처럼 느껴지지만 엄연한 현실인 게 바로 인생사다.


절정의 기쁨과 최악의 절망을 오가는 마법을 부리는 ‘점 하나’의 마법. 노래의 충격이 컸던 영향인지 또 어디에 그 마법이 통할까 생각할 엄두도 못 냈다. 작가는 역시 다르다. 드라마 ‘엄마친구아들’를 쓴 신하은은 우리가 게으름 피울 때 찾아냈다.


작가의 숱한 고민이 공감의 새로운 바탕을 발견했을 테지만, 우리가 너무 알고 있던 사실을 개념화해서 눈앞에 데려와 주기에 공감의 폭을 일순간 넓힌다. 맞아, 그렇지! 연인 사이를 포함해 부모와 자식 간, 친구 간에도 어떤 관계에도 통할 수 있는 ‘점 하나의 마법’이라 공감 폭이 무한이다.


기사라는 특성이 이미 제목에서 김을 빼고 시작하니 뜸 들일 것도 없다, ‘미움’과 ‘마음’이다.


왼쪽부터 승효와 석류, 배우 정해인과 정소민 ⓒ

‘엄마친구아들’의 시청 출발은 배우 정해인과 정소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엄친아’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정해인이어서가 아니다. 작품마다 다른 얼굴과 몸을 꺼내 보이는 ‘괴물 배우’의 신작은 늘 궁금하다(야호, 영화 ‘베테랑2’도 9월 개봉). 귀엽고 뽀얗게 생긴 연하남 전문으로 간단히 치부할 수 없게 하는 연기력에 대해 입증을 끝낸 배우다.


정소민은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 제일 잘하는 배우다. 자신을 내던져 연기할 줄 알고, 망가지면서도 예쁨을 잊지 않는 재주가 있다. 더불어, 상대 남자배우의 로코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다. 이번엔 또 어떻게 자신을 불사르고, 정해인에게서 무엇을 끄집어낼지 궁금했다.


왼쪽부터 도재숙, 나미숙, 서혜숙, 방인숙 ‘쑥자매 4인방’ 역의 배우 김금순, 박지영, 장영남, 한예주 ⓒ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고 까무러쳤다. 연기파 박지영과 장영남에 ‘대세’ 김금순에 더 떴으면 하는 한예주 배우가 ‘한 세트’ 고교동창생 ‘쑥자매 4인방’으로 나온다. 영화 ‘써니’의 ‘줌마 편’인가, 기대를 키운다. 연기 맛깔 난 조한철과 이승준이 각각 박지영과 장영남의 찰떡 남편이다.


배석류(정소민 분)와 최승효(정해인 분)의 죽마고우 정모음 역의 김지은 옆에 구급대원 우상욱과 이시형, 청우일보 기자 역 윤지은 옆에 사회부장 이지해, 승효와 건축사 사무소 ‘아틀리에 안’을 공동 운영하는 대표 윤명우 역의 전석호 옆에 직원 심소영, 석류 동생 동진 역 이승협 옆에 헬스 트레이너 유지왕 등 조연들의 연기도 차지다. 놓쳤으면 어쩔 뻔했어!


어쩌면 그래서 명대사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재미있어서. 기대하지 않던 ‘서프라이즈’ 명대사여서 그랬을까. 겨우 2회 끝 무렵에서, 드라마 시작하자마자 받은 명대사 선물의 감동이 크다.


무릉도원에서 떨어지는 탐스러운 석류를 받아 든 엄마 나미숙(박지영 분)의 태몽부터 남다르고 어려서부터 뭐든 잘해 남보다 앞서고 1등을 달리던 석류는 서른넷에 ‘현타’(현자 타임)가 왔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나는 왜 이토록 경쟁에 급급해 ‘빨리빨리’ 살아왔는지. 미뤄진 시간만큼 울산바위보다 큰 덩이가 되어 날아든 인생 숙제에 석류는 ‘잘나가던’ 인생의 수레바퀴를 급제동한다.


딸의 멈춤이 추락으로 다가오는 엄마는 절망하고, 엄마의 절망은 온몸으로 표현된다. 엄마식으로 딸을 걱정하는 모정임을 알 리 없는 석류는 자신을 미워하는 그런 엄마가 밉다.

‘미움’보단 ‘마음’이 큰 우리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nozomi2022

석류: 우리 엄마, 나 미워한다.

승효: 너도 지금 엄마 미워하잖아.

석류: 진짜 한심하지 않냐, 이 나이 먹고도 아직도 엄마가 밉다는 게.


승효가 말한다.


“너 그거 아냐. 저 달이 지구에 달려 있는 것처럼, 미움에도 위성이 있다는 거. 내가 누군가한테 기대하는 마음, 믿고 싶은 마음, 아끼는 마음, 그런 게 세트야. 그런데 걔들이 궤도를 이탈하거나 역행하면 그때 미워지는 거지. 애초에 마음이 없으면 밉지도 않아.”


마음이 있어 미움이 생겼듯 미움도 ‘점 하나’ 옮기면 마음이 될 수 있다. ‘움’의 ‘ㅡ’ 아래 점을 ‘미’의 ‘ㅣ’ 옆으로 움직이는 일, 쉽지 않지만 못할 것도 없는 게 인생이다.


감동하고서야 게으른 시청자로서 찾아보니 정감 어린 웃음을 주었던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감독과 작가가 다시 만난 ‘엄마친구아들’이다. 덕분에 어젯밤도 훈훈했고, 오늘 4회도 기다린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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