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져야 할 사람이 실권 쥐다니
욕심 과하면 실물로 감한다는데
대통령을 위기로 모는 윤핵관들
이런 정당이 대선에서 이겨 정권을 차지했다는 것이야말로 수수께끼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적 인기가 한 몫 했지만 어쨌든 국민의힘,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전 대선 후보가 새 정권을 더 만만히 보고 우쭐거리는 까닭이 달리 있을까.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대표직을 차지한 이 대표가 앞으로 얼마나 정부 여당을 가볍게 대할지 불문가지다. 겨우 0.73%포인트 이겨 정권을 되찾았으면서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당권에만 눈독 들이는 모습들이라니!
책임져야 할 사람이 실권 쥐다니
이준석 전 대표가 윤리위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았으면 흐트러진 당 지도부를 어떻게 추스를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당의 유력자라는 사람들은 누가 지휘권을 장악하느냐에 만 관심을 가졌다. 이참에 당권을 확실히 장악함으로써 다른 사람, 다른 세력이 범접을 못하게 하자는 의도가 훤히 읽히는 행보였다.
지난 7월 8일 이 전 대표가 징계를 당한 후 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혀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달 26일 그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 화면의 문자 메시지를 읽는 장면이 노출됐다.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텔레그램 문자를 보냈다. 권 대행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대통령은 ‘엄지척 체리’(버찌가 엄지손가락을 척 내미는 이모티콘)로 흡족함을 표했다.
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 기자실이 있고, 기자들의 카메라가 항상 의원들의 스마트폰 화면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권 대행이 몰랐을 리 없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들키기 위한 제스처였다고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추측일 것 같다. 정권 내에서의 자기 위상을 과시하기엔 아주 적절한 계기이자 자료였다. 그러니 의도적 노출이었다고 볼 수밖에.
윤 대통령으로서는 본회의장 상황을 간과했을 수 있다. 더욱이 권 대행이 그걸 카메라 앞에 내보일 것을 예상하고서 그 메시지를 보내기야 했겠는가.
“봤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
그 문자와 ‘엄지척 체리’로 여당 내 위계질서는 확실하게 정해질 것이었다. ‘권성동 중심체제’로!
권 원내대표가 이런 추측에 억울해 할 수는 있다. 정말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정말 그랬다고 할 경우 그는 ‘눈치코치 없고 자질이 한참 모자라는 리더’라는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욕심 과하면 실물로 감한다는데
어느 쪽이든 그의 직무대행 직 사퇴는 불가피했다. 그는 31일 그 자리를 내놨다. 문제는 그 정도로는 책임을 지는 것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지안아도 민심 이반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던 중에 권 대표의 ‘메시지 퍼포먼스’는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에게도 치명타가 되었다. 권 의원은 당연히 원내대표 직도 내려놔야 했다. 아울러 이른바 ‘윤핵관’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다 2선으로 물러나는 게 도리였다. 정부출범 때부터 윤 대통령에게 그만큼 부담을 줬으면 됐지, 상황이 어려워진 지금까지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을 일인가.
권 원내대표는 그 자리를 내놓기는 고사하고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까지 챙겼다. 9일 화상으로 열린 당 전국위원회는 대표, 대표 권한대행뿐만 아니라 직무대행에게도 비대위원장 임명권을 부여하는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미 아흐레 전에 사퇴를 선언했던 권 원내대표가 (다시 직무대행 직에 복귀했는지 사퇴처리가 안 되고 있었던지) 주호영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비대위는 17일부터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그 일주일 전인 10일 오전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결정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법원이 26일 주 위원장의 직무집행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민의힘은 27일 의원총회를 열고 ▲당헌·당규를 정비해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와 함께 ▲법원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및 항고 절차 진행하고, ▲이 전 대표 추가 징계를 촉구하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거취는 사태 수습 후 재논의한다는 등의 사항을 의결했다.
대통령을 위기로 모는 윤핵관들
진작 충분한 연구·검토와 필수절차를 거친 후에 비대위를 구성하든 뭘 하든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권 원내대표와 그를 중심으로 한 친윤 기득권 세력의 당 장악력 유지 욕심 때문에 너무 서둘렀다. 누가 보기에도 당의 ‘비상상황’은 꿰맞춰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주기를 바랐다면 너무 오만했거나 생각이 모자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욕심이 과하면 실물로 감한다’더니 권 원내대표, 주 (전)위원장의 처지가 그 꼴이 됐다.
아직 시간이 있다. 권 원내대표가 우선 자리를 내놓고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게 옳은 순서다. 권 대표에게 사태수습의 역할과 권한을 맡긴다는 것은 윤핵관 중심의 지도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럴 때는 잘 알려진 ‘윤핵관들’과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말을 들을 법한 중진들이 뒤로 물러서서 참신하고 유덕한 인사들에게 길을 터줄 일이다. 자신들이 아니라도 당 안팎에 똑똑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은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능지수는 높겠지만 감성지수가 국민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인상을 주는 나르시스트 이준석을 명분에서 압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가. 그러면서도 리더입네 할 것인가.)
윤 대통령도 윤핵관과 그들을 중심의 정치세력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게 능사일 수 없음을 깨달을 일이다. 그 사람들 권세 자랑하라고 국민이 표를 준 게 아니다. 대통령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여당의 경쟁력을 있는 대로 떨어뜨리는 인사들을 감쌀 이유가 어디 있는가. 측근들에 대한 의리보다 더 중 것이 국민에 대한 의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윤 대통령의 좌고우면을 이해하기 어렵다. 당 운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윤핵관과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뜻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