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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대중공업으로의 '점프'만 논란이 될까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2.08.31 09:24 수정 2022.08.31 10:2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좋은 조건에 '점프 이직'은 직장인 다반사

인력 유출 야속할 수 있지만 공정위 제소는 '무리수'

삼성중‧대우조선 직원 동요 막기 위한 '내부 단속용' 시각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현대중공업

고급‧고숙련 직종의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직장인들의 몸값 업그레이드를 위한 이른바 ‘점프 이직’이 크게 늘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도 희박해진 마당에 연봉 수준도 더 높고 더 안정적인 회사로 옮길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조선업계에서의 이직만 유독 논란이 되고 있다. 대형 조선사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물론, 중견 조선사인 대한조선, 케이조선까지 4개 업체가 현대중공업의 ‘인력 빼가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계열 3사가 각사 주력 분야의 핵심인력 다수에 직접 접촉해 이직을 제안하고, 통상적인 보수 이상의 과다한 이익을 제공하면서 일부 인력에 대해서는 서류전형까지 면제하는 특혜를 제공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설령 공정위 제재가 없더라도 ‘상도의’를 어겼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일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경쟁사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나 실적, 연봉 수준이 더 높은 자신들이 굳이 후발 기업의 인력을 직접 접촉해 자사 직원들보다 더 높은 임금까지 줘가며 데려갈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기존 직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주장도 펼친다.


인력 채용 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여부는 공정위에서 판단하겠지만, 사실 현대중공업과 다른 조선사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현대중공업이 부당한 방식으로 인력을 빼간 게 아니라는 전제를 깔더라도 인력 이동의 유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우조선해양은 불확실성이 큰 회사다. 장기간 실적악화로 공중분해 위기까지 몰렸다가 11조원 이상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의 인수가 무산됐지만, 언제까지 산업은행 산하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언젠가는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쪼개지거나 구조조정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 2분기까지 19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재계 1위 삼성그룹에 속해 있다지만 그룹 내 입지는 다른 계열사들에 비해 탄탄하지 못하다.


그에 비해 현대중공업은 실적도 상대적으로 좋고, 사업구조도 안정적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도 높다. 업계 1위라는 상징성도 있고, 현대중공업그룹의 본업이 조선업이라 그룹 내에서 홀대받을 일도 없다.


사업보고서상의 직원 평균 연봉은 현대중공업 계열 3사와 삼성중공업이 7000만원대로 비슷하고, 대우조선해양이 이에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기술 인력을 우대하는 현대중공업 계열사들의 특성상 이번에 논란이 된 기술직 연봉 격차는 좀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업종에서 흔히 벌어지는 ‘점프 이직’의 조건을 충족시킬 만하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의 주장대로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조선 4사의 공정위 제소는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조선 4사는 왜 현대중공업을 공정위에 제소했을까. 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 제소가 내부 직원의 동요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애초에 승소를 기대한 게 아니라 이직하려는 직원들에게 ‘자칫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게 목적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방식이 직원들의 애사심을 키우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조선업 호황과 맞물린 조선업계의 인력난이다. 조선 4사 입장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야속할 만하다. 수주가 한참 늘면서 인력이 더 필요한 마당에 핵심 인력이 회사를 떠났으니 그들을 데려간 업체에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공정위 제소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정위 조사 결과 현대중공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법적 제재는 물론 외부의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조사를 받고 기업 이미지도 실추되는 억울한 상황에 놓인 셈이 된다. 물론 제소한 기업들도 역풍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박 수주전에서 선주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조선사를 선택하듯이 직장인들도 더 좋은 조건의 회사를 택하는 게 시장 논리다.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도 재계 서열상 한참 후배인 IT 기업들에게 고급 인력을 빼앗기는 세상이다.


인력 유출을 막는 게 절박했다면 직원들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업계 상생 차원에서 지나친 규모의 경력직 채용은 자제하자는 논의를 진행하는 게 더 현명한 대응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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