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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농사직썰㊼] 원초적 과학의 시작 ‘토양’…미래를 위한 투자 필요


입력 2022.09.15 06:30 수정 2022.09.14 20:10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인류와 함께한 토양 재조명

농진청 토양대회 등 인재발굴 구슬땀

국내 토양학 세계적 수준…정책지원 절실


토양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토양에 대한 관심은 적다. 우리 미래세대가 풍요로워지려면 지금부터라도 토양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배군득 기자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우리가 밟고 있는 토양(흙)은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물질이야. 토양은 자연체 가운데에서 가장 인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유기체로 정의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토양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기초과학 중 하나로 꼽히지. 특히 농업에서 토양은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야.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 토양학은 물리, 지구과학 등에 밀려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지. 농촌진흥청에서는 토양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인력 양성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거든. 이제 토양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야.”


토양은 인류 문명의 태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문화 발달과 생태계의 지속성 측면에서도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문명이 발생한 대부분 지역은 온화한 기후와 기름진 토양이 존재해 농사가 잘 됐다. 당연히 문명 형성의 기반이 이뤄진 것 역시 토양이었다.


◆팔방미인 토양의 순기능…미래가치에 주목


토양은 토기, 토우, 도자기, 기와 등 생활용품에서 시작해 현재는 예술품으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토양 속에 있는 미생물, 그리고 원적외선 등은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로 입증됐다. 최근에는 흙 놀이가 아이들 정서와 지능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면역 체계까지 강화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다.


토양이 단순히 작물 생산의 가치를 넘어 의식주, 화장품과 의약품 원료, 축제 등에 활용돼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또 지각에 대부분 매장된 광물자원은 인류 역사에서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여전히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손연규 국립농업과학원 토양비료과 박사(농업연구관)는 “토양은 생명과 물질순환의 기반”이라며 “수질 정화와 수자원 저장, 오염 정화, 탄소저장을 통한 온난화 방지 등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이 지난 2018년 우리나라 토양의 환경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했더니 무려 218조원으로 나왔다. 이는 10년 전인 2008년 약 67조원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토양의 환경적 가치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토양과 가장 밀접한 산업은 단연 농업이다. 인류의 먹거리가 토양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토양은 물, 바람, 온도가 어우러진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된 것에 동식물에서 유래한 유기물이 합쳐져 탄생된다. 토양 1cm가 생성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0년 정도다.


이렇게 어렵게 형성되는 토양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간의 지혜가 더해져 토양이 작물생육에 적합하도록 개량하는 과정인 숙전화를 거쳐 농지를 만들었다. 땅을 개간한 후 자갈을 골라내 땅을 고르고 동식물의 사체, 분뇨 등의 유기물을 넣어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숙전화 과정은 단순히 토양을 개량하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토양의 생산성을 향상, 유지시키는데도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 토양은 생명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토양 침식 및 퇴화가 지속되면 표토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약 60년 밖에 남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중국은 지난 2005년부터 3년간 토양 유실 실태조사에서 연간 경제 손실 규모가 320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농약 등 화학물질도 토양을 병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토양에서 분해되지 않는 농약이 장기간 남아서 토양미생물을 죽여 흙의 기능을 잃게 만드는 요인을 작용하고 있다. 여름철 강우가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사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토양 표면이 침식돼 유실되는 부분도 살펴야 할 부분이다.


이 같은 문제가 대두되면서 농진청은 토양, 비료, 식물생리 등 농업 근간이 되는 연구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래 세대에 건강한 토양을 물려주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손 박사는 “환경부하 없이 토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국민 건강, 농업인 소득향상 등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농촌지역 복지정책 중 하나”라며 “에너지자립형 마을, 신도시개발, 수자원관리 등 정책 수립 시 토양분야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정책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한경대학교 인근에서 토양경진대회 참가자들이 토양 분석 등을 메모하고 있다. ⓒ배군득 기자
◆식물과 토양을 생기 있게…비료의 재발견


건강한 토양은 건강한 식물이 자라는 필수 요소다. 그렇다고 토양만 있으면 모든 식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식물이 토양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바로 비료다. 비료는 토양과 찰떡궁합인 셈이다.


식물이 자라는데 무기 양분은 필수다.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농업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구온난화를 막고 미래세대에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자는 지속가능의 트렌드는 양분관리 기술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수지균형을 맞춘 양분관리 필요성은 작물생산성과 환경보존을 양립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올바른 비료사용법은 개발도상국 국민 뿐 아니라 도시농업이나 텃밭을 가꾸는 일반인을 위한 상식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사람이 나이와 몸무게에 따라 필요한 영양소의 양이 다른 것처럼 작물도 종류와 생육 단계에 따라 요구량이 천차만별이다.


올바르게 비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땅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토양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기본이다. 매년 또는 매작기별 토양검정을 의뢰하고 물 관리, 비료사용처방 정보를 잘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비료란 오랜 기간에 걸쳐 학자들이 식물성장에 필요하다고 밝혀낸 무기성분들이 들어 있는 물질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화강암 기반 농경지가 국토의 70% 이상인 나라에서는 비료를 이용한 경지의 양・수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비료의 과다 살포는 새로운 환경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보통(화학) 비료나 부산물비료(퇴비)에 포함된 질소성분이 토양에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로 배출돼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농경지에 살포된 비료가 물로 씻겨 내려가거나, 토사 유실로 호수나 물웅덩이, 하천으로 유입되면 부영양화 현상을 야기한다.


이처럼 비료를 남발하면 토양이 병든다. 올바른 비료 사용을 위해서는 토양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인 셈이다. 산성인 토양은 중금속이 잘 녹아나와 작물에 쉽게 흡수된다. 독성 유발 가능성이 있어 정상적인 생육이 어렵다.


토양산도가 산성인 경우 공급된 질소비료가 아질산가스로 변화돼 식물에게 피해를 준다. 비료 효과도 없어진다. 알칼리 토양은 질소를 암모니아로, 인산은 흡수될 수 없는 형태로 바꿔 양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식물이 먹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손 박사는 “토양의 pH(수소 이온 농도를 나타내는 지표)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토양검정을 통해 석회질 비료를 조절하고 흙과 잘 섞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기질 비료를 주기 최소 2주 전에 비료를 줘야 토양산도도 교정이 되고 무기질 비료와 화학작용에 의한 손실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세계토양조사경진대회에서 개인전 5위를 차지한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재학 중인 장우석씨는 국내에서 토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번 세계대회를 즐겼다며 토양계 우상혁이 되고 싶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배군득 기자
◆토양분야 ‘우상혁’을 꿈꾸는 젊은 인재들


높이뛰기 세계 2위인 우상혁 선수는 우리나라 비인기 종목인 육상, 그것도 높이뛰기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 높이뛰기에 열정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항상 긍정 에너지가 넘친다.


토양 분야에서도 이같은 ‘우상혁’을 꿈꾸는 젊은 기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토양은 기초과학 중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어서 기피하는 분야가 됐다. 대부분 대학에서도 생물학,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등에서 조금씩 다룰 정도다.


지난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영국에서 열린 ‘세계토양조사경진대회’ 우리나라는 단체전에서 종합 4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종합 4위는 역대 최고 성적이다. 미국, 호주, 독일 등 토양에 적극적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세계토양조사경진대회는 토양분야의 올림픽으로 여겨진다. 토성, 층위구분, 토양구조, 자갈함량 등에 대한 분석을 얼마나 정확하고 정해진 시간에 할 수 있는지를 가리를 대회다.


이번 대회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호주 등 10개국이 참여해 자웅을 겨뤘다. 이 대회에서 개인전 5위에 오른 장우석(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재학)씨는 참가국의 토양에 대한 열정에 놀랐다고 밝혔다.


장씨는 “미국 참가자들은 토양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국제 토양관련 대회에 유능한 선수 선발이 가능하다”며 “스페인의 경우 눈에 띄지는 않지만 팀워크가 좋다. 독일은 맨발로 토양의 느낌을 관찰하는 독특한 방식이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토양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정책적,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는 속마음도 내비쳤다. 토양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임에도 무관심에 치러지는 대회로 인해 우수한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얘기다.


그는 “4차 산업, 4차 원예 등 토양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높아지는 추세다. 주된 식량은 노지에서 수확되기 때문에그만큼 익숙하지만 많이 알 필요가 있다”며 “단순하게 토양이 농업 자원뿐만 아니라 탄소저장에도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토양에 집중해서 데이터 수집 뿐 아니라 새로운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 아니다보니 중요한 토양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일상에서 토양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홍보가 필요하다”며 “최근 탄소중립의 경우도 저장원은 토양이다. 토양 자원 활용할 분야를 넓혀서 배워야 한다. 대중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토양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노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농진청은 지난달 18일 한경대학교에서 제8회 토양조사경진대회를 열었다. 토양조사경진대회는 토양조사 현장실무능력을 지닌 전문 인재를 키우기 위해 토양학을 전공하는 전국 대학생, 대학원생이 모여 토양조사 기량을 겨루는 국내 대회다. 이 대회에 입상하면 4년 마다 열리는 세계토양조사경진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고병구 농촌진흥청 농업환경부장은 “많은 학생이 토양에 관심을 갖고 우정을 다지며 전공 분야에 대한 자긍심을 쌓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여기서 배운 점을 바탕으로 미래 우리나라 농업연구 분야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9월 29일 [新농사직썰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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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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