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발표
마릴린 먼로·뱅크시에 영감
(여자)아이들이 정확한 이해와 존중이 담긴 오마주를 보여줬다. 오마주는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할 때 자주 쓰이는 프랑스어다. (여자)아이들은 신곡 '누드'와 뮤직비디오에 마릴린 먼로에 대한 존경을 뜻과 함께 자신들의 해석을 곁들여 그룹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했다.
멤버들은 '누드' 뮤직비디오에서 각자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영화 속 한 장면들을 연출했다.이들의 뮤직비디오 속 마릴린 먼로는 그저 '금발의 백치미'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다이아 박힌 티아라에 감동하지도,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 마릴린 먼로가 멍청하길 바랐던 할리우드의 바람과 달리 분장실 뒤에는 19세기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의 'Leave of grass'가 있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는 독서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아이들의 마릴린 먼로를 향한 '오마주'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의 영향이 컸다.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의 선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고 추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다. 그의 실제 인생을 다룬 전기 영화가 아닌 상상력이 더해진 조이스 캐럴 오츠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마릴린 먼로의 루머들과 사생아로 태어나 애정 결핍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그려냈다.
이에 '블론드'는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혹평을 받고 국내에서는 커뮤니티 중심으로 '블론드' 시청 거부 바람이 일었다.
앤드루 도미닉이라는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이 난자한 마릴린 먼로의 인생을 국내 걸그룹 (여자)아이들은 다르게 바라봤다. (여자)아이들의 '누드'는 의미부터 중의적이다. 보통 '누드'는 벌거벗은 모양을 표현한 그림, 또는 조각을 떠올리기 쉽다. 이 같은 인상을 주는 단어를 (여자)아이들은 꾸밈 없는 본연의 '나'란 메시지를 심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그냥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마땅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겉치레는 벗어 던지고 꾸밈 없는 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당찬 각오를 강조했다.
'누드'의 뮤직비디오는 마릴린 먼로 뿐 아니라 영국 작가 뱅크시에게도 영감을 받았다. 보여주는 이미지에 갇혀 본연의 메시지를 간과하는 행태들에 괴로워했던 두 아티스트와 같이 (여자)아이들 역시 아이돌로서 이미지로 소비 당하는 위치에 있다.
(여자)아이들은 예술의 상업적인 부분을 비판하는 행위 예술가와 마릴린 먼로를 연결해 돈만 따라가는 행태를 지적했다.
이 작업 과정은 (여자)아이들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전소연이 지난 5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할 당시 잠깐 비춘 적이 있다. 그 동안 전소연은 (여자)아이들의 타이틀부터 수록곡까지 대부분 곡에 참여했다. (여자)아이들은 데뷔곡 '라타타'(LATATA)는 사랑과 배신에 대한 감정을 '착한 척'하지 않고 솔직히 풀어냈으며 '세뇨리따'에서는 첫 눈에 반한 남자를 앞에 둔 여성의 당당한 마음을 표현했다. '톰보이'에서 역시 남자들이 강요한 여성의 이미지로 사느니, 차라리 미친 '톰보이'가 되겠다고 말한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저 '나'이길 바라는 노래다.
전소연을 필두로 한 (여자)아이들이 외쳐왔던 메시지에 '누드'의 기획이 정확하게 또 한 번 맞아 떨어진 셈이다. 2022년 미국의 영화와 한국의 가요가 마릴린 먼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분명한 건 (여자)아이들의 노래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블론드'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박수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