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신뢰 붕괴에 '경고음'
고강도 통화 긴축 '물음표'
금융위기론과 함께 뱅크런이란 유령이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내 돈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은행을 향할 때 자본주의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물리학 운동법칙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도 투자 실패를 맛본 뒤 "별들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온 아픈 경험은 앞으로의 위기를 이겨낼 원동력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확실성이 뱅크런으로 번지도록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이후 금융 불안의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백신을 찾아본다.<편집자주>
노벨 경제학상이 모두 금융위기를 논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갑작스레 다가온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대목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결정이 시장의 신뢰 붕괴에 따른 뱅크런 가능성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각국의 고강도 통화정책 긴축에 의구심을 드러냈다는 평이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딥비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등 3명이 선정됐다.
이들은 모두 금융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금융위기는 시장이 신뢰를 잃었을 때 발생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부가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한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다이아몬드 교수와 딥비그 교수는 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이 대규모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에 관한 이론적 모형을 제공했다. 두 교수는 1983년 저널 오브 폴리티걸 이코노미에 기고한 '뱅크런, 예금보험 그리고 유동성' 논문에서 이른바 '다이아몬드-딥비그'라 불리는 분석 모형을 제시했다.
이들은 해당 논문에서 단기 예금을 장기 대출로 바꾸는 유동성 전환이란 은행의 특성 상 뱅크런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이벤트로 봤다. 그러면서 이 같은 파산 가능성은 무작위의 결과물임을 증명했다.
은행은 예금자들이 맡긴 돈을 전액 인출해줄 만큼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에 파산하지 않고 있지만, 다른 예금자들이 돈을 모두 빼 갈 것이란 우려가 퍼지면 뱅크런이 불거질 수 있다. 그런데 둘 중 어느 균형이 실현될지는 미리 예측할 수 없고, 이는 은행의 역량과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다이아몬드 교수와 딥비그 교수는 뱅크런이 사소한 사건으로 촉발될 수 있다는 경고한다. 금융시장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 뱅크런을 예방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들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버냉키 전 의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런 정책을 직접 실행한 인물이다. 리먼 브러더스부터 금융사들이 잇따라 무너지자 보험사인 AIG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파산을 막았고,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1983년에 발표한 대공황에 관한 첫 번째 주요 논문에서 디플레이션을 방치하면 결국 신용 흐름이 차단된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되면 은행까지 부도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 만큼,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칠요가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뱅크런이 금융 메카니즘보다 시장 불신이란 사회 심리적 요인에 의해 벌어질 수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자했다는 점은 사실상 현재 금융권에 보내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국들이 코로나19 직후 0%대까지 떨어졌던 기준금리를 다시 끌어올리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번 노벨상의 선택은 사람들이 금융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뱅크런 백신 설명서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