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정부, 지난해 집값 잡기 위해 고강도 규제한 게 원인
15위 부동산 업체 쉬후이, 역외 부채 상환 전면 중단
부동산 업체들, 내년까지 만기도래 부채 2921억 달러
美투자회사 “中부동산업계 달러채권 위기…분석불가"
중국 내수 경제의 핵심 축인 부동산시장에 ‘디폴트’(채무불이행)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보증하거나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개발업체들까지 줄줄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중국 15위 부동산 기업 쉬후이(旭輝)는 지난 1일 해외 채권에 대한 원리금 4억 1400만 달러(약 5910억원)를 상환하지 못했다. 이 업체는 몇 주 전에도 ‘전환사채 디폴트를 선언하는 등 자금난을 겪어왔다. 쉬후이가 갚아야 할 해외 은행 대출과 어음, 전환사채는 모두 68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쉬후이를 살리려고 지난 5월 ‘모범 부동산 기업’으로 선정해 신용보증을 도왔지만 헛수고로 끝났다.
상하이시 정부가 지분 46.4%를 보유한 뤼디(綠地)그룹도 홍콩증시 공시를 통해 오는 13일 만기인 3억 6200만 달러 규모의 미지급 달러화표시 채권에 대해 상환의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 이유로 올해 상하이(上海) 등지의 코로나19 확산과 얼어붙은 부동산시장 상황 등을 거론하며 "매출과 사업 면에서 상당한 위축을 겪었고 이로 인해 현금흐름과 유동성 등 금융사정에 영향을 받았다"고 뤼디그룹은 설명했다.
뤼디그룹은 제주도에서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뤼디국제병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호텔과 의료시설을 포함한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개설허가를 둘러싼 논란과 법적분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병원 건물과 토지 등을 국내 기업에 매각했다. 제주도는 뤼디국제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한 상태다.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지난해 말 최대 업체인 헝다(恒大)그룹이 디폴트 상황에 내몰린 것을 시작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중국 부동산업계가 갚아야 할 부채 규모는 모두 2921억 달러에 이른다. 당장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규모도 537억 달러나 된다. 미국 투자회사인 루미스 세일즈의 즈웨이펑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 부동산업계의 달러화표시 채권 위기가 심각해져 더는 분석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시장을 더는 분석할 수 없을 때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더욱이 중국 부동산 업체의 절반 가까이는 돈을 벌어도 빚(원리금)을 갚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실상태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업체(자산 기준)의 45%는 벌어들인 이익으로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 부동산 업체 가운데 20%는 미분양 아파트 등 재고자산 평가액을 최근 시세로 재조정할 경우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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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가격상승에 기반하는 ‘콘크리트 의존형’이다. 부동산 업체가 지방정부로부터 70년간 토지사용권을 사들여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게 중국 경제의 성장모델이라는 얘기다. 이런 만큼 부동산 버블(거품)이 꺼지면 중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한 비중은 6.7%다. 여기에다 건축(6.3%)과 철강, 가전, 인테리어 등 각종 연관산업을 더하면 GDP의 30%를 차지하고, 중국인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이다.
중국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유재산인 토지사용권을 매각해서 재원으로 활용한다. 토지사용권 매각자금이 2020년 기준 지방정부 재정수입의 46% 수준이다. 중국 경제성장의 3대 축인 부동산과 인프라, 수출 중 인프라 투자의 재원은 부동산에서 나오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토지매각이 불가능해지고 지방정부의 재정파탄으로 이어진다. 중국 지방정부가 부동산시장 부양에 목을 매는 이유다.
중국 부동산 업체들은 선(先)분양을 통해 주택매수자들로부터 분양대금을 미리 받은 뒤 이 돈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대출이 어려워지는 데다 분양대금 수입마저 급감하는 바람에 부동산 업체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시장정보업체 중국부동산정보(CRIC)에 따르면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업체의 9월 신규 주택 판매액은 5709억 위안(약 111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4% 감소했다. 1~9월 누적 감소율은 반토막 수준인 45.4%에 이른다. 중국의 월간 주택판매액은 지난해 7월부터 올 9월까지 1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승승장구하던 중국 부동산시장이 급속히 냉각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업체의 신규대출을 제한하는 고강도 규제를 가한 탓이다. 2020년 코로나19 봉쇄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자 집값이 치솟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부동산대출 총량제와 주택담보대출 심사강화, 위장이혼을 통한 주택청약 방지대책 등 ‘규제 폭탄’을 쏟아내며 집값 잡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그러나 부작용이 커졌다. 헝다그룹이 디폴트 선언한데 이어 자자오예(佳兆業), 화양녠(花樣年), 신리(新力), 당다이즈예(當代置業 등 대형 부동산 업체들도 줄줄이 디폴트 상태에 빠지며 연쇄부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급기야 부동산 버블붕괴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여기에 부동산 개발 업체의 부실로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되자 주택을 분양받은 소비자들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환 거부에 나서며 다시 아파트 공사가 멈추는 악순환이 형성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3000만 가구, 분양은 됐지만 잔금 미지급 등의 이유로 비어 있는 집이 1억 가구에 이른다고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추산했다. 10년 동안 새 집을 짓지 않아도 될 정도의 공급과잉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중국에서 부동산이 무너지면 가계, 정부, 관련 기업들이 일제히 큰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면 금융시스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IMF에 따르면 중국 은행권의 전체대출 중 부동산 업체에 대한 대출비중은 8%이고, 주택담보대출자에 대한 대출이 20%에 이른다. IMF는 “재정이 취약한 지방은행은 부동산 업체가 파산하면 신용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급한 중국 정부는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기 바쁘다. 지난해만 해도 부동산이 ‘악의 축’이라도 된 듯 집값 잡기에 골몰하던 중국이 이젠 부동산시장 되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기준금리격인 대출우대금리(LPR) 중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LPR을 올 들어 세차례 인하해 연 4.30%로 조정했다.
지방정부는 직접 주택매입에 두팔을 걷고 나섰다.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정부는 부동산 업체로부터 새 집 1만 채를 사들일 계획이다. 쑤저우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쑤저우 관련 기관이 이미 (해당 건설 프로젝트의) 매물 200채를 샀다"고 전했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는 신규 주택 3000채를 사들여 임대주택 등으로 사용할 방침이다.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는 빈민촌 재개발 명목으로 3250만 위안 규모의 국유 부동산 업체의 주택을 매입하기도 했다.
중국 금융당국도 가세했다. 은행에 올해 안에 최소 6000억 위안의 자금을 부동산 부문에 지원하라고 지시한데 이어 인민은행은 지난 9월 중국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 중국농업개발은행에 담보보완대출(PSL)로 1082억 위안을 순공급했다. 인민은행이 PSL로 유동성을 푼 것은 202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PSL은 인민은행이 2014년 도입한 만기 3년 이상의 장기 대출 프로그램이다. 정책은행들은 PSL 자금을 지방정부에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시중에 현금이 돌도록 한다. 재정적자 누적으로 신용도가 낮아진 지방정부는 PSL 대출을 받을 때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 받는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대출규제를 철폐하는 등 부동산 규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 없이는 싸늘하게 식은 부동산시장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레이먼드 영 호주뉴질랜드(ANZ)은행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방정부가 민간 부동산 업체로부터 자산을 매입하고 동시에 지방정부도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며 "정부의 개입이나 구제금융 없이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분석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