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갈등에 2023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 넘겨
김진표 의장 "정기회 내 처리…8·9일 본회의 개회"
민주당 "이상민 행안부장관 해임안 포함해야" 반발
국민의힘 "野, 아직도 대선불복…예산 후 국조해야"
여야가 내년 예산 증·감액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 합의에 실패했다. 이에 예산안은 법정 처리시한인 2일을 넘기고 말았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예산안 통과가 먼저라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 장관 해임안까지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김진표 국회의장의 8, 9일 본회의 개최 중재안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원만한 합의에 이를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2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간 회동을 주재한 뒤 입장문을 내고 "헌법이 정한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이 오늘이지만 내년도 나라 살림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국회에 주어진 권한이자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8, 9일 양일간 본회의를 개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여야가 예산안과 이 장관 해임안을 두고 평행선을 걷자 예산안 처리를 위해 잡혀있던 이날 본회의를 연기한 것이다.
이어 김 의장은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한 경우라도, 모두 정기국회 회기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며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의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조정·중재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중재안에도 여야는 예산안 통과가 법정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이 상대방 탓이라고 공방을 벌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이용해 정부 예산안을 마구 칼질하는 탓에 도저히 시한을 맞출 수 없었다"며 "민주당의 태도는 대선 불복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자신들의 수정 예산안을 통해 사실상 '이재명 정부'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느닷없이 해임건의안과 탄핵소추안 상정 처리를 들고 나온 것은 국정조사 합의를 고의로 파기하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민주당의 대선 불복과 책략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 폐회일 이전에 반드시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민주당의 몽니를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여전히 예산안 통과의 전제조건으로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의 상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선 본회의가 열리는 8, 9일에 어떻게 할지 의총에서 최종적 입장을 정해야겠지만, 국민 상식에 입각해 이 장관에 대한 문책이 정기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당초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가 열리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보고한 뒤 5일 본회의 때 표결할 계획이었다. 앞서 전날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열지 않자 명백한 월권이자 직무유기라고 맹비판한 민주당은 이날도 이 장관 해임건의안 보고 등을 위해 본회의 개의를 요구했다. 결국 본회의 일정이 변경되자 민주당은 일단 8일 본회의에서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보고한 뒤, 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의장이 친정인 민주당의 즉각 본회의 개의 압박에도 본회의 개의를 늦춘 이유는 이 장관에 대한 민주당의 해임건의안이 상정될 경우 여야 대치가 극으로 치달아 예산안이 무기한 표류될 우려가 있어서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야 갈등을 풀어내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는 예산안을 합의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민생 공백을 막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본회의 연기로 인해 1주일의 협상시간이 주어진 만큼 정치권의 시선은 향후 여야의 움직임으로 집중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위의장과 함께 직접 내년도 감액·증액 및 부수 법안 등 쟁점 사안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정책위의장이 직접 심의하고 마지막 쟁점은 원내대표 간 협의하는 식으로 협상의 물꼬를 조금이나마 트겠다는 의미다.
이에 여야 간 예산안의 쟁점이었던 대통령실 이전, 경찰국 신설, 원자력에너지 등 민주당이 삭감을 원하는 예산이나, 지역 화폐 등 국민의힘이 줄이길 원하는 예산에 대한 합의점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아울러 '이 장관 해임건의안' 뇌관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닌 만큼 정기국회 내 예산안 타결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예산안 처리를 우선하고, 국정조사를 거쳐 이 장관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안을 고집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8·9일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함께 해임건의안이나 탄핵소추안 처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민주당이 의총에서 이 장관 해임안을 넘어 탄핵소추안까지 제기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협상이 매우 중요해졌다"며 "국가 살림인 예산안이 아직도 편성되지 못한 것은 굉장히 큰 문제인 만큼 다음 주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이 부분에 대한 협상은 무조건 진전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