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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현장] 서울로 온 포천 연극 ‘봄날’, 수상한 조합 3가지로 명작 예고


입력 2022.12.12 09:25 수정 2022.12.12 13:3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창작극 '봄날'의 배우들. 아랫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정종준, 김혜라, 김형자, 김지혜, 이진주, 신광호, 고아라, 주승민 ⓒ 이하 포천시립극단 제공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는 수많은 소극장이 있고, 저마다 개성 뚜렷한 연극을 내걸고 관객을 향해 손짓한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만큼 젊은 관객들을 염두에 둔 로맨스, 공포,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정통연극이나 뮤지컬, 쇼 오락 형식으로 공개된다.


대게는 젊은 배우들이 활기 넘치는 무대를 선보이고, 드물게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테랑 연극인이나 노익장을 과시하는 배우들이 작품을 올리기도 한다.


오는 14일 대학로 스카이씨어터 2관에서 막을 올리는 창작극 ‘봄날’(연출 한대관, 희곡 고아라)은 여러 면에서 예상을 빗나간다. 지난 10일, 초연을 나흘 앞둔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아직 무대의상을 입지 않았고, 무대와 소품들에 익숙해지도록 막간의 암전을 적용하지 않은 것만 빼면 이미 막 오른 공연처럼 집중력 있게 리허설이 진행됐다.


한대관 연출가는 '치매 얘기를 밝게 해보자'에서 연극 '봄날'이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

치매에 걸린 구대용(정종준 분) 할아버지는 자신이 건물주임을 모른 채, 건물의 관리인을 하고 있다. 건물 1층에서 카페를 하는 아들 석기(주승민 분)를 건물주로 알고 ‘카페 사장’이라 부르고, 손녀 하라(김혜라 분)를 ‘사장 딸’이라 부른다. 아들과 손녀는 대용이 충격을 받을까 봐 그에 맞춰 연기한다. 작은 아이디어 같지만, 치매 가족을 둔 우리의 현실도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게 극의 분위기를 환하게 밝힌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수상한 조합’은 바로 치매와 밝음의 결합이다. 어쩐지 치매 노인을 소재로 하면 눈물이 동반되어야 할 것 같지만, ‘봄날’은 극 중 내내 힘차게 달린다.


'봄날'에서는 "요구르트 한 잔~"이 중요한 매개체다 ⓒ

‘봄날’의 수상한 조합 두 번째는 창작곡들이 등장하고, 배우들이 직접 부른다는 것이다. 정극 연기와 노래의 결합. 출연진들이 동작을 딱딱 맞춘 ‘칼군무’를 추는 건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어떤 고백이나 방백보다 절절하게 전달해 매우 효과적이다.


자칫 잘못하면 연기와 노래가 따로 놀 수 있는데, 배우들의 역량으로 노래와 대사가 매끄럽게 이어진다. 특히, 걸그룹 스피넬과 2EYES에서 활동했던 김혜라의 맑은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은 귀 호강을 선사한다. 정종준이 노래 ‘봄날’ 독창으로 숨은 실력을 발휘하는 대목에서는 감정과 가사와 곡이 하나 되어 극의 압권을 형성한다. 김형자도 ‘탤런트 김형자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앨범을 1977년 출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노래가 좋다. 강혜리 작사가의 가슴을 울리는 가사와 유재경 음악감독의 유려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음률이 인물들의 내면과 과거사를 표현해 주어, 수십 개의 장면을 절약해 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덕분에 군더더기 장면도 없고 이야기 중간중간 독창이나 듀엣곡, 합창이 들어오니 극의 재미도 배가 된다.


현장에서 배우는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이다' ⓒ

창작 뮤지컬 ‘봄날’의 수상한 조합 세 번째는 신구세대 배우들이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1970년 TBS 공채 10기로 데뷔한 데뷔 53년 차 배우 김형자(양주댁 역), 1979년 KBS 공채 7기로 데뷔한 데뷔 44년 차 배우 정종준이 이제 막 연기의 걸음마를 떼는 포천시립극단의 단원들과 하나의 무대에서 ‘공연’ 한다.


“TV에서 뵙던 선생님들과 작품을 하게 돼 영광입니다. 사실 합 맞추는 장면을 앞두고 무서웠어요, 실수할까 봐. 실수해도 잘 받아쳐 주시고, 연기로서도 인생으로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일진2 역, 배우 이진주)


“연습실에 오시면 먼저 말 걸어주시고, 재미있는 얘기도 해 주시고, 일찍 오시고… 선배로서 본보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잘 배워야겠다! 생각했고요. 늘 웃으면서 챙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상상 예능 ‘연애조작단’ MC 역, 배우 김혜리)


구대용 역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 정종준은 후배들의 연기 선생님 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이다’라는 진리를 실전으로 가르쳐 주었고, 발성과 표정 등 기본기부터 다잡아 주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대용이 치매에 걸린 줄 모르는 채 그를 짝사랑하는 양주댁 역할을 맡은 김형자는 극에 웃음과 활력을 불어넣듯 무대 뒤에서도 격의 없이 후배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선배 배우로서의 경험을 나누며 다가섰다.


이미 합을 맞춘 신구 선후배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젊은 배우들만의 공연, 대선배 배우들끼리의 연기도 너무 좋고 강의나 책을 통해 선대의 유산이 후대로 전해지는 것도 좋지만. 하나의 작품을 함께하며 ‘산 지식’으로 건네지는 현장이 뜻깊다.


웃음꽃 피는 '봄날' 리허설 현장 ⓒ

끝으로 수상한 조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다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창작 뮤지컬 ‘봄날’이 포천시립극단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고, 단원들의 역량 강화와 성장을 위해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서 초연된다는 것이다. 포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제작하는 의미 있는 작업에 구석기 역의 배우 주승민과 구하라 역의 김혜라가 객원 배우로 참여했고, 관록의 배우 김형자와 정종준이 가세했다.


서울 대학로로 진출한 포천시립극단의 작품 ‘봄날’은 오는 14일 오후 7시 30분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22년의 마지막 날까지 서울 대학로 스카이씨어터 2관에서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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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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