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약 1년이 지난 시점인 2018년 5월, 청와대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소득주도성장' 추진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저소득 층인 1분위(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8% 하락한 반면, 5분위(상위 20%)의 소득은 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5분위 배율도 7배를 훨씬 넘은 역대 최대치였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저소득층 근로자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면, 기업의 생산 및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다. 이를 위해 16.4%라는 역대급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시장에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일자리의 감소와 함께 오히려 소득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발표됐던 가계동향조사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음을 숫자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즉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였다.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 등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설계자들이 바빠졌다. 홍 전 수석은 직접 청와대 춘추관 식당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자세한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저소득 1인 가구가 다수 표집되는 등 표본이 잘못됐다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정곡을 찔린 듯 해명은 장황하고 복잡했으며, 자아비판도 아니고 정부가 자신이 발표한 통계를 스스로 반박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었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분기 가계동향조사 악화된 소득분배 지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이 해임된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 직후인 2018년 8월의 일이었다. 경제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닌 통계청장을 교체하는 엉뚱한 선택을 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고 잔여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기에 인사 배경을 두고 뒷말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 입맛에 맞는 통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인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지만, 청와대는 무엇이 급했는지 별다른 해명도 없이 밀어붙였다.
통계청장 교체 뒤 소득분배 지표는 마법처럼 개선된다. 소득 5분위 배율이 4배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비율도 크게 줄었다. 이전 조사와 비교해 표본과 조사방식을 싹 바꾼 결과였다. 신뢰하기 어려웠지만 "통계 정확성 제고를 위해 변경을 추진했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우격다짐에 반박하기도 쉽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파트 가격의 급등으로 시장에서는 '벼락거지' '패닉바잉' 등 신조어까지 생겨나고 있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 김현미 장관이 정부 통계를 인용해 "집값은 11% 정도 상승했다"는 답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집값 폭등에 온 국민이 고통을 호소하는 시점에서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만큼은 자신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태연하게 했다.
의문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 해소될 전망이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소득과 집값, 일자리 부문 통계에 왜곡 정황을 발견하고 주요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 중이다. 광범위한 통계 조작이 있었으며 만약 이 과정에 홍 전 수석 등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개입됐다는 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은 통계를 국가 정책 판단의 기초로 국정 실패를 진단하고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수단이 아닌, 정권의 실정을 가리는 수단으로 감히 사용했다"며 "통계 조작은 천인공노할 국가 범죄다. 국기 문란, 국정 농단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