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주요 삼성 경영진과 베트남 출장
푹 주석과 회동 시 반도체 투자 요청 이뤄질 듯
반도체는 국가 경제·안보 핵심…'신중론' 이어갈 듯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주요 경영진을 이끌고 2년 만에 베트남 출장길에 오르면서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투자할지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국가주석과 총리로부터 잇딴 투자 러브콜을 받아온터라 이 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사업계획을 새롭게 내놓을지 주목된다.
반도체에 대한 미·중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는 상황에서, 업계는 삼성이 출구전략으로 베트남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미 북미를 중심으로 대규모 해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다, 기술 유출 등 보안 위협도 적지 않은 만큼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장 부회장,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을 이끌고 전날 오후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이번에 연구소(베트남 R&D센터)가 준공한다"는 언급 외에 다른 발언은 없었으나 업계는 이 회장이 베트남 R&D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뒤 현지 정·재계 관계자들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내년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 베트남 현지 상황을 파악한 뒤 다양한 사업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 과정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회동할지 관심이다. 그간 푹 주석은 이 회장과의 면담 자리마다 반도체 공장 투자를 요청해왔다. 지난 3년간 세 차례(2018년 10월, 2019년 11월, 2020년 10월)의 회동에서 푹 주석은 이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반도체 러브콜'을 보냈다.
특히 2년 전인 2020년에는 베트남에 투자하면 '천시지리인화'(하늘의 때, 땅의 이로움, 사람의 화합)를 얻는다는 말까지 언급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겠다고도 강조했었다.
푹 주석 뿐 아니라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도 '삼성 반도체'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8월 노태문 사장과 하노이에서 만난 찐 총리는 반도체를 포함해 삼성전자가 투자를 확대해줄 것을 요청했다. 더 많은 사업기회를 제공받음으로써 베트남이 아시아 공급망의 한 축으로 자리잡기 위한 판단으로 읽힌다.
베트남 수장들의 적극적인 구애에 이 회장으로서도 베트남 현지 추가 투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미 스마트폰, TV, 배터리, 카메라모듈 등을 현지에서 생산하며 베트남을 아시아 핵심 생산기지로 삼고 있다. 타이응우옌성과 박닌성에서 생산하는 삼성 스마트폰 출하량 비중은 글로벌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TV,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등을 생산하는 호찌민 공장은 삼성전자 가전 사업의 핵심기지로 꼽힌다.
계열사 투자도 활발하다. 삼성전기는 현재 베트남 타이응우옌성 공장의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고집적패키지기판)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투자 규모는 약 1조원으로, 내년부터 양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삼성이 추가 투자를 단행하게 될 경우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을 검토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현호 부회장, 노태문 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 동행한 경영진들을 감안하면 그런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린다.
다만 반도체의 경우 가장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푹 주석과 찐 총리가 거듭 나서 투자를 요청하고 있지만 반도체가 국가 경제와 안보 핵심에 있는 만큼 투자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는 평택, 수원, 화성 등에 반도체 사업장을 두고 있고 중국 시안에는 낸드플래시 공장, 쑤저우에는 테스트·패키징(후공정) 공장을 운영중이다. 미국 오스틴에도 반도체 공장 2곳을 가동중이며 테일러에는 170억 달러를 들여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미국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더 짓겠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면서 약 200조원대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미국에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반도체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서는 글로벌 사업 거점을 다각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지만 기술 유출 등 보안 위협도 경계해야 하는 만큼 다각적이고도 꼼꼼한 진단이 요구된다.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수출을 위해서는 사전 정부허가도 필수적이다.
반도체 투자는 단순 생산 시설 뿐 아니라 원자재, 물류 등 여러 인프라를 고려해야하는 사안으로,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천명의 일자리가 걸려있는 만큼 해외를 택했다는 점에서 국내 투자를 등한시한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삼성의 베트남 반도체 신규 투자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추가 투자가 이뤄진다면 반도체 보다는 모바일, 가전, 영상기기 등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는 "푹 주석과 이 회장이 네 번째 회동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반도체 등 추가 투자 요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반도체는 사업성 뿐 아니라 기술 안보 등이 걸린 문제이므로 성사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