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인간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


입력 2023.03.02 13:50 수정 2023.03.02 13:50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더 웨일’

듬성듬성하게 자란 머리칼하며 경계를 알 수 없이 늘어진 턱살, 어둡고 컴컴한 낡은 집에서 한 남자가 땀을 잔뜩 흘리며 헐떡이고 있다. 소파에 앉은 있는 남자는 걷는 것은커녕 숨 쉬는 것조차 위태롭게 보인다. 더욱이 272kg 거구로 분한 남자가 할리우드의 미남배우 브렌드 프레이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는 영화 ‘조지 오브 정글’과 ‘미이라’ 3부작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전 세계적 스타가 되었지만 영화 ‘미이라’ 촬영시 얻은 부상과 이혼이후 위자료 문제 그리고 본인의 우울증 증세로 우리의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가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분장을 통해 살을 찌워 한 편의 영화로 귀환했다. 영화 ‘더 웨일’은 그가 출연한 작품들 중에서 변곡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대학 강사 찰리(브렌드 프레이저 분)은 가정이 있는 상태에서 제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렸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연인은 죽음을 선택했고 그에 대한 상처로 찰리는 폭식증에 걸려 자신을 학대하다 결국 거구의 몸이 되어 한 발짝도 집밖을 나가지 못하게 됐다. 272kg의 몸으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찰리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십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 분)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영화는 구원과 용서의 메시지를 담는다. 울혈성심부전을 앓고 있는 찰리는 자신의 대한 혐오로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치료대신 오늘도 음식물을 입에 우겨넣으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단 하나, 자신 때문에 망가진 딸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은 절박하다. 자신에게 남겨진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자신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혐오하는 딸이 사랑받는 삶을 살길 바란다. 찰리의 그런 소망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 강하다. 찰리의 모든 헌신은 엘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면의 소리를 통해 진실을 마주한다. 대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찰리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에세이를 쓰는 법을 학생들에게 강의한다. 줌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그의 카메라만 홀로 꺼져 있다.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짓으로 둘러댄다. 찰리는 학생들에게 진실한 글을 쓰라고 강의하지만 가족과 심지어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절친이자 간호사에게 조차 진실하지 못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찰리는 내면의 진실된 소리를 찾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 딸 엘리와 행복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찰리는 모든 무게를 이겨내고 드디어 비상한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의 명장면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구원해 낼 수 있다는 감독의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감독의 연출도 돋보인다. 배우를 가장 빛나게 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지닌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수차례의 수술과 재활, 이혼, 성추행 사건 등으로 할리우드 밖으로 밀려난 브렌드 프레이저에게 제2의 전성기를 맞게 했다. 2022년 베니스영화제를 시작으로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23개의 연기상을 수상했고 3월에 있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남우주연상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가족은 사랑하고 친밀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영화 ‘더 웨일’은 딸을 구한 아빠, 선교사를 구한 딸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