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법조계에 물어보니 118] "징집 거부 러시아인, 난민?…'정치적 박해' 인정 여부 관건"


입력 2023.03.03 05:06 수정 2023.03.03 21:57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인천지법 "난민 심사 기회 줘라"…법무부 항소 "징집 거부만으로는 난민 인정 사유 될 수 없어"

법조계 "정치적 위험 있어야 난민 인정…법원, 징집돼 참전시 생명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 고려한 듯"

"러시아인 중 1명, 반정권 활동하다가 벌금…자료 충실히 제출하면 정치적 박해 인정될 가능성 커"

"난민 심사 할지 말지와 난민 인정 여부 구별돼야…난민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면 난민 심사로 가야"

포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도시.ⓒ 연합뉴스

강제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인들에게 '난민 심사' 기회를 줘야 하는지를 두고 법무부와 법원이 충돌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러시아인들의 난민 심사 신청 사유가 단순 징집 거부인지, 정치적 의견 표명에 따른 박해로 인한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난민심사를 할지 말지와 난민 인정 여부는 구별돼야 한다"며 법무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일 법무부는 "러시아인 난민 신청자 2명에 대한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 1심 판결에 항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4일 인천지법 행정1단독 이은신 판사는 A씨 등 러시아인 3명이 난민심사를 받게 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2명에게 난민 심사 기회를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이 판사는 "징집 거부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면 박해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며 "난민 심사를 통해 구체적인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고 중 한 명에 대해서는 "제2 국적을 가진 나라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단순히 징집을 거부한 사정만으로는 난민 인정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와 국제 규범"이라며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연합뉴스

법조계에서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국민이 강제 징집을 거부한 것을 '정치적 박해'로 볼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식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난민은 정치적인 위험이 있어야 난민으로 인정된다. 경제적으로, 배고파서 온 사람들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징집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박해로 볼 수 있느냐는 애매한 영역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이 캐나다 망명에 성공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해 감옥에 가는 것을 정치적 박해로 본 것"이라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진지한 논의가 벌어져서 결국 대체 복무제가 허용됐다. 이번 러시아인들도 정치적 소신에 따라서 망명 신청을 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건 변호사(법무법인 건양)는 "법원에서는 현실적으로 징집되면 참전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법무부는 국내에서 징집거부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난민 인정 시에는 고려된다면 모순이 된다는 점, 만약 난민 지위가 인정된다면 앞으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난민 신청을 할 것이라는 현실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판결이 어떻게 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난민 신청 사람들의 숫자, 국민여론, 그리고 그들이 징집거부를 한 것이 단순히 참전하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평화라는 소신에 의한 것인지 등을 얼마나 입증하는지에 달려 있을 듯하다"고 부연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결국 러시아인들의 난민 신청 사유가 단순 징집 거부인지, 정치적 의견 표명인지가 관건 아니겠느냐"라며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전쟁 중 러시아를 떠나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했다고 했는데 단순 징집 거부로 보여서 난민 심사에 회부조차 안 한 것이고, 법원에서 면밀히 검토해 보니 단순 징집 거부로 볼 수 없으니 난민 심사는 진행하라고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청자 중 1명은 이미 반정권 활동을 하다가 구타도 당하고 벌금도 냈다. 그 과정에서 전쟁 반대 활동도 했는데, 자료를 충실히 제출한다면 단순 징집거부가 아니라 정치적 박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대한민국 법원.ⓒ연합뉴스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난민심사를 할지 말지와 난민 인정 여부는 구별돼야 한다"며 "난민법 시행령을 보면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는 난민심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난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면 당연히 난민 심사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행 난민법 시행령 제5조 7항에는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는 난민인정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사례처럼 '명백히 이유가 없는지'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는 일단 난민인정 심사에 회부해 판단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라는 지적이다.


황 변호사는 "심사 회부 결정 절차에 대해 법무부는 굉장히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다. 실질 심사를 할 거면 그것은 난민심사지 심사 여부 결정 심사가 아니지 않느냐"라며 "징집 거부 자체로 바로 난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정치적 의견의 표명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요소들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국제 기준인데, 법무부는 '강제 징집 자체로 바로 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표현만 쏙 빼서 국제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굉장히 형식적인 심사를 실질 심사화하며 난민에 대한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 물어보니'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