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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중국 兩會] ‘2952명 전원 찬성’…시진핑 사상 첫 3연임 국가주석 등극


입력 2023.03.10 17:40 수정 2023.03.10 17:45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전체회의에서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오른쪽) 국가주석이 국무원 총리로 사실상 확정된 리창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사상 첫 '3연임' 국가주석에 올랐다. 지난 2018년에 이어 두 번 연속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에 당선돼 마오쩌둥(毛澤東)을 넘어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관영 중국중앙TV방송(CCTV) 등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전체회의에 참석한 전국 대표 2952명은 10일 임기 5년의 국가주석과 부주석,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전국인대 상무위원장 등을 선출했다.


시 주석은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 주석 투표에서 반대·기권표가 한 표도 없는 ‘2952명 전원 찬성’이라는 만장일치로 ‘완벽한’ 3연임을 확정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권력의 최고봉인 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에 오르며 집권 3기를 시작한 뒤 이날 국가주석에 3회 연속 선출됨으로써 최고 지도자 재임기간을 15년으로 연장했다. 국가주석에 선출되면서 당과 국가, 군에 걸친 명실상부한 ‘1인 천하’ 자리를 굳혔다.


특히 시 주석은 마오쩌둥을 뛰어넘는 ‘불멸의 대기록’도 세웠다. 처음으로 국가주석직에 선출된 2013년 전국인대에서 반대 1표, 기권 3표를 얻어 특표율이 99.86%를 기록한 그가 두 번 연속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에 선출된 것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9월30일 사회주의 중국 수립 전날 선거에서 반대표 1표로 중앙인민정부 주석에 당선됐다. 당시 이 한 표의 반대표에 대해 마오쩌둥 본인이 '겸손'의 의미로 던진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후 다른 사람의 표로 확인됐다.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 역시 투표에 참여한 인민대표들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친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인 만큼 높은 지지율은 '관의'(官意)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2003년 전국인대에서 국가주석 투표에서 반대 4표와 기권 3표를 얻었다. 당시 장쩌민(江澤民) 국가 중앙군사위주석과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에 대해서는 반대표가 이례적으로 많이 나왔다. 후 주석에게 국가주석직만 넘기고 군권은 틀어쥐었던 장 잔 주석은 반대 90표, 기권 122표로 '간신히' 국가 중앙군사위주석직에 유임됐다. 장 전 주석의 ‘심복’인 쩡 부주석은 반대 177표, 기권 190표로 이례적으로 저조한 득표율로 국가부주석에 선출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대 전체회의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1949년 사회주의 중국 건국 이후 국가주석에 세 번 연임하는 것은 시 주석이 처음이다. 국가주석과 부주석은 국무원 총리를 비롯한 다른 국가 고위직과 마찬가지로 2회까지만 연임할 수 있었다. 시 주석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2018년 전국인대에서 헌법을 개정해 3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국가주석은 중국 헌법상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기구로 실질적 권한은 거의 없다. 전국인대가 법률 공포뿐아니라 국가직 임면권, 조약비준권 등 대부분의 국가권력을 갖는다.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도 자리를 신설한 1954~1959년 1회만 국가주석을 지냈다. 국가주석은 국가를 대표하는 실권 없는 상징적인 지위에 불과한 만큼 마오쩌둥은 1959년 류사오치(劉少奇)에게 이 자리를 넘겼고, 2세대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중앙군사위 주석만 가지고도 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국가부주석에는 한정(韓正) 국무원 상무부총리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국가부주석은 헌법상 국가주석의 업무를 보좌하며 주석의 위임을 받아 주석의 직권 일부를 대행할 수 있으며 주석의 궐위 시에는 주석의 직위를 승계한다.


그는 2017년 최고 지도부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줄곧 경제수도인 상하이에서 근무하며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 등을 역임한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 인사다.


시 주석 체제 출범 이후 상하이방이 그의 '정적' 파벌로 여겨진 상황에서 지난해 당대회때 한정을 포함한 상하이방 출신이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에 모두 탈락해 그의 정치인생도 끝났나 싶었지만 이번에 국가부주석으로 재신임을 받아 ‘부활’했다.


중국 최고 권력기관이자 입법기구인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에는 당서열 3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상무위원이 투표자 전원의 찬성표를 받아 선출됐다.


이런 가운데 경제·외교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사’ ‘소방수’란 명성을 얻었던 왕치산(王岐山) 전 국가부주석은 정계를 완전히 은퇴했다. 시 주석 체제 1기 중앙기율위 서기로 반부패운동을 주도해 시 주석 ‘1인 천하’를 열었고,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뒤에도 2기 국가부주석으로 재등장해 외교 의전을 도왔던 그는 한정 신임 부주석과 바통을 넘겨주고 정계를 떠났다.


전국인대는 11일에 총리, 12일에는 부총리와 국무위원, 각 부 장관을 선출한다. 총리에는 당 서열 2위인 리창이 사실상 확정돼 있다. 13일에는 예산안 등을 확정하며 폐막식에서 시 주석이 연설한다. 폐막식 직후 기자회견에선 신임 총리의 기자회견이 열린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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