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영 ‘첫 금 안긴’ 박태환은 누구?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수영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낸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수영의 위상을 단숨에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기린아다.
1989년 9월27일 박인호(58), 유성미(51)씨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박태환은 천식을 앓던 7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동네 수영장에서 물에 처음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재능을 보이자 부모는 어린 소년을 전문 수영 선수로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고,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노민상 현 수영대표팀 총감독이 운영하던 ´윈윈클럽´이었다.
체계적인 교습을 받으며 박태환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유연성과 부력(浮力), 폐활량 등 수영 선수로서 타고난 몸은 노민상 감독에 의해 재발견됐다.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김봉조 당시 수영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되며 주목을 받았다. 전체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였던 것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박태환은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자유형 400m 예선에 나선 박태환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준비 구령 소리에 물속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수영은 육상처럼 부정출발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박태환은 그대로 퇴장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해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쇼트코스) 자유형 1,500m에서 준우승하며 자신의 기량을 세계에 처음 알렸다.
이후 박태환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담력과 승부욕을 키워갔고 이듬해인 2005년에도 메달 및 신기록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4월 중국 상하이 국제수영연맹(FINA) 쇼트코스(25m)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2개의 은메달을 수확했고, 같은 달 동아수영대회와 6월 국가대표 기록평가회,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수영선수권대회, 10월 전국체전, 11월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등에서 한국신기록을 무려 8개나 쏟아냈다.
2006년은 박태환이 아시아 최정상에 오른 해였다. 8월 범태평양수영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 2개를 세우면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수확한 박태환은 12월에 열린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자유형 200m와 400m, 1,500m를 모두 휩쓸어 3관왕에 오르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직후 태릉선수촌을 나오며 노민상 감독과 결별한 박태환은 후원사인 수영용품 전문 브랜드 스피도가 꾸린 전담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석기 전 수영대표팀 감독의 지도 아래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박태환은 단숨에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8월 일본국제수영대회 자유형 400m에서 다시 한 번 해켓을 무너뜨린 박태환은 11월 FINA 경영월드컵 3개 시리즈에서 3연속 3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금메달 꿈을 키워갔다.
작년 말 전담팀 내부 불화로 박석기 감독과 헤어진 박태환은 유운겸 감독을 전담 코치로 맞아들였지만 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다.
태릉선수촌에서 노민상 감독과 재결합해 24주간의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해낸 박태환은 결국 한국 수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하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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