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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신호위반 사고, 근로자 과실 크면 산재 인정 안 돼" [디케의 눈물 71]


입력 2023.04.26 08:50 수정 2023.04.26 08:50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근로자, 퇴근길 사고로 요양급여 신청했으나 공단서 미승인…행정소송도 패소

법조계 "출퇴근길 사고, 노동법상 산재 인정되나…자해 및 범죄행위 사고는 인정 안 돼"

"위법 행위 있었다고 무조건 인정 못 받는 것은 아냐…중과실·고의 정도 따져 판단"

"중과실 범죄 따른 사고도 산재 보상 해주는 경우 많아…재원 고갈 우려도"


ⓒgettyimagesBank

퇴근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위법 행위로 발생했고 그 행위가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위법하게 발생한 교통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는 법리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중과실로 정한 범죄행위 사고에 산재 보상을 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아 업무상 재해에 관한 세부적 법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고은설 부장판사는 최근 주유관리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 2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주유관리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21년 5월 일을 마치고 자전거로 퇴근하던 중 교차로에서 정지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하다가 우측에서 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외상성 경막하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자전거를 타고 평소처럼 퇴근하던 중 발생한 산재 사고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지급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2021년 7월 "도로교통법상 신호위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며 A씨의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후 A씨의 소송 제기로 치러진 행정소송에서도 법원은 "사고 지점의 도로 구조나 신호가 유달리 복잡하지 않았고, 사고 지점이 A씨가 평소 퇴근할 때 이용하던 경로로 신호를 위반할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았다"며 "A씨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노동법 전문 박성우 노무사는 "통상 출퇴근 길에 발생하는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나, 고의로 자해를 하거나 범죄행위로 인한 사고는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에서 A씨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A씨의 신호위반 행위가 사고의 가장 결정적이고 주된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에이앤랩 신상민 변호사는 "사고에 A씨의 중과실이 개입 됐고, 사업자가 제시한 방식이나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 한 것이 아니라면 업무상 재해가 부정 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는 '근로자 개인의 고의 및 자해행위,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부상 등은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재판부 또한 ▲A씨의 진행차로 신호가 적색 신호로 바뀐 것을 충분히 인식할 시간이 있었다는 점 ▲자전거 도로가 있었음에도 차로로 통행한 점 ▲사고 지점이 A씨가 평소 퇴근할 때 이용하던 경로로 신호를 위반할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았다는 점 ▲당시 사고 차량의 운행속도가 빠르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요양급여 청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gettyimagesBank

다만 전문가들은 신호위반 등 위법 행위를 했거나 과실이 있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정향 이승우 변호사는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따질 때 '근로자의 고의나 중과실이 사고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느냐'를 판단한다. 모든 케이스를 무 자르듯 판단하지 않는다"며 "직원들과 회식 후 다음 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출근 중 사고를 낸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판례가 있는데, 이 경우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보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법원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사고 발생 이후 신호위반에 대한 중과실 고의 정도 등을 따져 봐야 한다. 특히, 운전자와 보행자 간 사고 발생 시 '쌍방과실'인 경우라면 업무상 재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박 노무사 또한 "신호위반에 따른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당시 지형이 특이해 신호를 보기 어려웠고, 사고가 난 다른 차량의 과실이 더 컸다는 게 입증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위법 행위에 따라 발생한 교통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에 대해 재판부가 법리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취지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업무상 재해에 관한 세부적 법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산재 인정 여부를 두고 법리상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엄연히 중과실로 정한 범죄행위에 산재 보상을 해주는 사례가 적지 않아 일반적인 법 감정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변호사는 "모든 사고 발생 케이스를 산재로 인정해준다면 자칫 산재보험금으로 지급되는 재원 고갈의 우려가 있고, 근로자의 과실을 넓게 인정한다면 산업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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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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