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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권신수설(議員權神授說)


입력 2023.05.15 07:07 수정 2023.05.15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책임질 일 없이 누리기만 하는 직장

소나기 지난 후 복당하겠다는 뜻?

적반하장이 일상화된 민주당 풍토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남국 의원 탈당 등 최근 당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엄청난 보수를 준다. 법정 보좌진 수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 특권·특혜·예우 또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 일을 안 해도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는 지켜진다. 다만 호통·비아냥·조롱·조소·모욕 분야에서 일가견이 (은근히) 요구된다. 상대는 누구라도 좋다. 아무나 찍어서 마음껏 그 재주를 뽐내기만 하면 (적어도) 자기편으로부터는 열렬한 박수를 받는다.


요즘엔 무지막지한 투쟁의 대가로 계좌에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 물론 매월 정해진 보수에 각종 수당과 지원비 등도 꼬박꼬박 주어진다. 해외 여행경비까지 연간 예산으로 책정된다. 게다가 소속된 동아리, 취업하고 있는 직장의 힘이 막강해서 난공불락의 성채가 되어 준다. 법을 심하게 어겨 체포·구금될 위기에 처하더라도 동아리 멤버들이 한마음 되어 방어품앗이를 한다.

책임질 일 없이 누리기만 하는 직장

(아직 공공연해진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업무를 내팽개치고 돈벌이 판을 따로 벌여도 되는 특권이 새로 공인받으려 대기 중이다. 업무야 어차피 보좌진 몫이다. 한 가지, 회의 때 그들이 만들어준 자료를 제대로 읽지 못해 망신당하는 경우만은 조심해야 한다. 창피해질 테니까.


업무 시간 중에 딴전을 펴고 돈벌이를 하다가 들켜도 해결방법은 있다. 일단 결백하다고 우긴다. 동아리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조사·감찰하겠다고(아마도 마지못해) 신호를 주면 잽싸게 탈퇴해버리면 된다. 잠깐 동안만. 그런 다음엔 ‘부당한 정치적 공세’라며 단호히 맞설 것을 공언한다. 대개 이런 직업의 인사들에 대한 재판은 확정판결 때까지 부지하세월이다. 이쯤되면 신(神)도 부러워할 만한 직장 아닌가.


(아, 빼먹고 넘어갈 뻔했다!) 요망되는 자질 가운데 ‘빈곤 포르노’ 연출력이 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난하다. 우리집 가사 도우미도 가난하다. 우리집 정원사도 가난하다. 우리집 운전기사도 가난하다”라며 막무가내로 우겨야 한다. 뒤축이 뭉텅 떨어져 나간 신발, 구멍 난 운동화, 라면 먹는 모습이나, 반 지하방 또는 옥탑방 생활을 담은 사진, 상거지 차림, “한 푼 줍쇼” 구걸 따위의 소품도 필요하다.


가상화폐로 떼돈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14일 탈당했다. 국회 법사위 회의 중에 아주 열심히 코인 투자를 했다는 의혹으로 온 나라 안을 들썩이게 했던 젊은 투자의 귀재다. 빈곤을 드러내 보이며 후원금 보내달라고 호소하던 그가 알고 봤더니 많을 때는 100억원에 이르렀을 수 있는 직업적 코인투자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활동 중에도 그는 코인 거래에 열중했다. 이태원 참사 보고를 받을 때조차도 코인 거래에 몰두했다. 회의실에 앉아서가 아니라 화장실, 휴게실 등에서 거래했노라고 했다. 그러니까 문제없다?


당 진상조사단이 조사에 들어가고 이재명 당 대표가 긴급 윤리감찰을 지시한 상황에서 김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다. 이미 진상조사단이 ‘에어드롭(무상제공) 가능성 및 4개 이상의 코인 지갑 보유’사실을 지도부에 보고한 바 있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당장은 이를 막아야 하겠다는 심정이 되었을 법하다. 그는 잽싸게 당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피해버렸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 더는 당과 당원 여러분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소나기 지난 후 복당하겠다는 뜻?

소나기를 피한 후 복당하겠다는 말인 듯하다. 전날에는 페이스북에 에어드롭과 게임업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해 “정말 황당무계 그 자체”라면서 “향후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오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의 글을 올렸다. 이정도 기개(?)가 있으니까 국회의원이지.


민주당 이 대표는 김 의원 탈당 후 열린 ‘쇄신 의원총회’ 모두 발언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조금 전에 민주당의 국회의원이었던 김남국 의원이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탈당한 것 같다. 우리 당 소속 의원이 그런 문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민주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사과는 당연한 것이지만, ‘탈당한 것 같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대표는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뜻이 된다. 누구보다 자신을 열렬히 추종하던 김 의원이 상의 한 마디 없이 탈당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종용한 것은 아니고? 정말 보고 없는 일방적 탈당이었다면 이는 이 대표 지도력이 허약하다는 뜻이 된다. 그런 평가를 감수하는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루 24시간 불철주야로 국민의 삶을 챙겼어야할 선출직 공직자가 책무를 충실히 하지 못해 국민께 실망을 드린 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민에게 이 말은 위로는커녕 울화만 돋워줄 뿐이다. 책무를 충실히 하지 못했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팽개치고 일확천금을 노렸다. 언론 보도로는 당내에서도 몇몇 의원들은 김 의원의 그런 행각을 알고 있었다. 회의 때의 언행이 동료 의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보기에도 이상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김 의원의 불성실성을 이제야 깨달은 듯 말하고 있다. 책무를 방기한 점에서는 그나 김 의원이나 도긴개긴인 셈이다.


이어 열린 의총이 끝난 후 박광온 원내대표는 김 의원에 대한 추가조사 방침을 밝혔다.


“탈당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 엄정 조사 후 징계하겠다.”

당 차원의 징계는 불가능하게 됐다. 당원이 아닌 사람을 당이 징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복당 불허’ ‘공천 배제’ 등을 선언적으로 결정할 수는 있겠다. 정말로 책임감이 분명하다면 국회 윤리위의 징계 추진을 약속하는 게 옳다. 아울러 원내 제1당으로서, 또 조사 주체로서 검찰에 고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말 그렇게 할지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미지수다. 이 대표는 알고 있겠지만.

적반하장이 일상화된 민주당 풍토

박 원내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오늘 의원총회 이후 재창당의 각오로 근본적 반성과 본격적인 쇄신에 나설 것을 약속드린다. 반성과 성찰 위에서 온전히 쇄신 결과로 국민께 평가받겠다.”

그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5개항의 결의안과 당 윤리기구의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진작 단행했어야 할 자정조치 대신 정권과 검찰 공격에 정신이 팔렸던 결과가 청렴 개혁의 아이콘인 양하던 김 의원의 타락을 불러온 것 아닌가?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을 내팽개친 당 소속 의원과 당료가 더는 없는가?


아무 것도 없는데서 의심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다양한 혐의로 수사 및 재판을 받는 처지이면서도 자기 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사과를 안 한 것은 물론 남들이 즐겨 행하는 탈당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직을 내려놓은 것도 아니다. 계속 ‘정치탄압’ ‘정당탄압’만 주장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송영길 전 대표, 김 의원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흔쾌히(?) 사과했다.


송 전 당 대표,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은 다투어 탈당했다. 하나같이 “정치검찰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하는데 성실히 조사를 받으면 되지 맞서는 건 뭔가. 일반 피의자 모두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고 대항하면 법치가 가능할 수 없다. 원내 제1의 정당이 국가를 무법천지로 만들 작정인가?


1년간 1400회나 코인 거래를 했다는 김 의원이 기가 살아서 되레 ‘한동훈 검찰의 작품’이라고 기고만장할 수 있는 풍토가 당 안에 이처럼 조성돼 있었던 거다. “윤석열 실정을 덮으려는 아주 얄팍한 술수”라고도 했는데 언제부터 김 의원이 대통령의 맞상대가 되었는가? 이 또한 이 대표나, 송 전 대표 유(類)의 자존망대(自尊妄大)로 인한 착각일 것이다.


정치인, 정당이 함께 타락했다(물론 전체는 아니다. 극히 일부라고 해도 위험도는 다를 바 없다. 부패와 타락은 엄청난 감염력을 가졌으니까). 그 병을 고치지 못하면 대의민주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걸 딛고 어떤 체제가 등장할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두렵다.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포퓰리즘 정치다.


정당과 정치인이 대중의 뜻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더욱이 그 대중 혹은 국민이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의 상태에 있다면 정치는 파괴의 교의(敎義)에 매몰된다. 반대파와 반대되는 이념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관적 정의강박증에 빠지는 것이다. 마침내 자유가 자유를,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잡아먹는 상황이 초래되고 만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심각하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대각성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가요, 정치인 여러분?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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