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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유재선 감독 "열린 결말, 해석은 관객의 몫" [칸 리포트]


입력 2023.05.23 15:17 수정 2023.05.23 15:18        데일리안(프랑스 칸)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국내 가을 개봉

"괴물 신인의 탄생이다."


올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첫 공개된 '잠'을 본 사람들의 이견 없는 반응이다. 스릴러 영화에 종종 쓰이곤 했던 몽유병, 빙의 등의 소재를 군더더기 없는 서사와 압박감으로 공포감을 유발했다. 95분 동안 단 한 장면도 낭비는 없었다. '잠'이 첫 번째 연출이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21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발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만난 유재선 감독은 무시무시한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고 단정했다. 그는 데뷔작으로 칸에 초청됐다는 현실만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라고 전했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 유재선 감독은 몽유병으로 일어나는 뉴스들을 접하고 주변의 인물들이 어떻게 일상을 지낼 수 있을까란 흥미가 생겨 이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알콩달콩한 현수, 수진의 모습이라든지, '함께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가훈 등은 실제 유재선 감독과 아내의 관계 및 신념이 녹여져 있다.


"2019년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에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무의식 속에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당시 무의식 속 제 인생의 가장 큰 화두가 결혼 생활과 남녀 관계 등이었거든요. 또 현수가 무명의 연극배우로 나오는데 저도 무직 상태였고 아내가 더 잘 벌고 있었어요. 제가 직업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라, 고민이 많았는데 아내가 먼저 '둘이라면 함께 극복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여전히 결혼에 대한 아내의 신념이고요. 저는 그 생각이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그런 면모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선균과 정유미는 유 감독이 바랐던 안성맞춤 캐스팅이었다. 첫 작품에서 원하는 캐스팅을 이뤄낼 수 있었던 건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이선균, 정유미 씨가 함께하면 정말 소원이 없고 완벽하겠다 싶었죠. 하지만 아무래도 장편을 처음 만드는 입장에서 전설적인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제작사 대표님이 시나리오도 재미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셨어요. 다행히 대표님 말씀대로 관심을 보여주셨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출연해야겠다고 결정하셨던 것 같아요."


유재선 감독은 현수라는 캐릭터를 실제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로 그려낸 이선균의 연기력에 매번 감탄을 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썼을 당시 현수는 자칫하면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겠단 걱정이 됐어요. 왜냐하면 현수는 수진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을 주로 하기 때문이죠. 계속 반응만 하면 과연 이 캐릭터가 살까 싶었는데 이선균 씨께서 계속 현수의 행동과 습관, 성격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시더라고요. 영화에서 현수가 엉뚱하기도 하고 나이스하지만, 강단이 있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선균 씨의 연구 끝에 완성됐다고 봐야죠. 정말 이 작품을 크게 살려주셔서 감사하고 감탄스러워요."


현수와 수진은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즐기는데, 이 곳은 캐릭터의 감정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자칫하면 단조로울 수 있었던 설정이지만, 캐릭터를 대변하는 집의 온도가 영화의 미장센을 거들었다.


"약간 구식 아파트를 고른 건 저의 심미적 취향이었어요. 깔끔하고 미니멀한 느낌보다는 수진과 현수의 관계처럼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세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걸 기회 삼아 한 공간이 주는 단점을 극복하자 싶었죠. 1장은 수진과 현수의 애틋한 분위기, 2장은 조금 더 차갑고 삭막하죠. 3장 역시 캐릭터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요소들로 메우기 위해 미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영화는 현수의 증상을 과학적인 시선과, 샤머니즘 양 극단에서 접근한다. 이 설정이 영화의 장르성을 강조하는 설정이지만 유재선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그 안에서 이뤄지는 수진과 현수의 관계였다.


"몽유병, 빙의 등의 요소가 영화에 등장하지만 하나의 플롯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현수와 수진 부부가 갈등을 빚고,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귀접이니 미신적인 요소가 중요한 장치 일뿐 목적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뻔뻔하고 자유롭게 변주를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팀 출신으로, 현재도 봉준호 감독의 꾸준한 응원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 역시 그를 눈여겨 보고 시나리오를 받은 이선균에게 유재선 감독과 함께 일해볼 것을 추천 했었다.


"봉준호 감독님께서 '잠'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계속해서 응원을 해주셨죠. 제 영화적 영웅, 멘토 같은 분이 끊임없이 좋은 말씀과 응원을 해주시는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무속신앙이라는 문화권 차이였을까. '잠' 상영 당시 해외 관객들은 예상을 벗어난 지점에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영화가 유머러스하면 할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애초에 칸 비평가 주간에 선정됐을 때 키워드가 코미디였어요.(웃음) 스크리닝 때 한국인들의 웃음과 외국인의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이 저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관객과 함께 보는 것에 대한 묘미인 것 같아요.한국 관객들이 볼 때는 심각한데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엉뚱해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랐어요. 문화권으로 인한 시각 차이가 다른 걸 보니 더 많은 나라의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더라고요."


영화는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유 감독은 기준을 제시해 영화가 납작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 애초부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관객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그걸로 만족스럽다.


"어떤 해석이든 모두 설득력이 있더라고요.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어요.(웃음) 단 한 가지 명확한 건 수진과 현수는 견고한 부부 관계라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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