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운전자 "사랑하는 손자 잃고, 저만 살아남아…미안하고 가슴 미어져"
"누가 일부러 사고 내서 손자 잃겠는가…'사고 냈다'는 누명 쓰고 싶지 않아"
사망 아이 아버지 "제조사 이권 및 횡포 앞에 생명가치 도외시 돼서는 안 돼"
"이번 사고 원인 철저히 규명해 달라…옳은 것이 강한 것 이기는 사회 돼야"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민사소송의 첫 재판이 5개월 만에 열렸다. 이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 손자를 잃겠느냐"며 제조사 차량의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하며 통곡했다.
24일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23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민사2부는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 운전자와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 손자를 잃은 할머니 운전자 A 씨는 "사랑하는 손자를 잃고 저만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가슴이 미어진다"며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 손자를 잃겠느냐. 제 과실로 사고를 냈다는 누명을 쓰고는 죄책감에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자는 변호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다. 재판장님께서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사망한 아이의 아버지 이상훈 씨 또한 호소문을 통해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입증케 하는 자체가 모순된 행위이며 폭력"이라며 "언제까지 제조사의 이권과 횡포 앞에 국민들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도외시돼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는 가정파괴범이자 연쇄살인범이다. 부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주시고 대한민국은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사회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유족들은 차량의 결함으로 발생한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면서 지난 1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차량 제조사 측에 손해배상액 7억 6000만원을 청구했다.
원고 측은 처음부터 차량의 급발진에 따른 사고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고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급발진의 전형적인 4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웽'하는 굉음과 머플러(소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액체, 도로상 타이어 자국과 흰 연기가 있고 블랙박스 영상에는 차량의 오작동 결함이 있음을 나타내는 운전자의 생생한 음성들이 녹음되어 있다"고 했다.
이 사고는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발생했다. 당시 SUV 차량에 12살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타고 있었고 급발진 추정 사고로 초등학생인 아이는 숨졌다. 당시 할머니도 큰 부상을 당했지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아버지 이 씨는 지난달 23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5만여명의 동의함에 따라 곧 관련법 개정 논의 또한 이뤄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차량 급발진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제조물 책임법 운용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