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변경' 우크라 전쟁 계기로
껄끄러워진 대러시아 관계
대만 '현상 유지' 강조 尹정부
中 "대만 관련 입장 정리하길"
윤석열 정부는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 강화를 이어오고 있다.
개도국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역할 확대 의지에 국제사회는 반색하고 있지만,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특히 대러시아 관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윤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해당하는 만큼 용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선언한 한국이 '메시지' 이상의 '행동'에 나서길 촉구하고 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국제사회가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 △전쟁법 중대 위반 사안 등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할 경우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다.
갖가지 해석이 쏟아지자 윤 정부는 '가정을 전제한 발언'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비살상 무기만 지원한다'는 기존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살상무기 지원을 '레드라인'으로 선언하고 맞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최신 핵·미사일 기술을 지원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대중국 관계의 경우, 윤 정부는 △상호존중 △호혜 △공동이익에 기초한 관계를 강조하며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은 묵인하지 않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경제관계를 고려해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에 담긴 '포괄성'을 강조하며 중국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거듭 피력했지만, 관계 개선 계기는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
양국관계의 현주소는 고위급 교류 현황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시진핑 3기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급 교류는 지난 1월 외교장관 간 통화가 유일하다.
그사이 중국은 물밑에서 압박 카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단체관광 허용국 배제, 한국 포털 사이트 차단 의혹, 한한령(한류제한령) 등 민간 분야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중국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윤 정부의 대만 관련 입장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한중 수교 당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했던 만큼, 자신들이 중국 '내정(內政)'이라 주장하는 대만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말라는 취지다.
실제로 싱하이밍 한국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26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 양국관계는 조금 어렵다"며 "서로의 중요한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에 관련된 입장, 특히 대만 관련 입장을 다시 정리해 (중국을) 배려해줬으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말했다.
윤 정부는 지난 1년간 한미동맹 강화 및 가치외교에 힘을 실었던 만큼, 향후 중국·러시아와 접촉면을 넓혀가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최근 주목받는 디리스킹(derisking)을 추구할 전망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3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조찬 포럼에서 "한국을 찾은 유럽연합(EU) 지도부도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줄여나가겠다는 '디리스킹'을 이야기했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과 조화를 추구하며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 나간다'는 것도 전부 같은 시각에서,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