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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귀국, 닉슨처럼 '변신'할 수 있을까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3.06.26 07:00 수정 2023.06.26 07:00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경륜의 부통령, '애송이'에게 충격패

절치부심해 8년 뒤 대선서 '엄중'과

진부함·지루함·낡은 이미지 불식

"끝난 사람" 취급한 이들에 충격 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외유를 마치고 지난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발탁된 리처드 닉슨은 '황태자'라 불리며 8년간 승승장구했다. 여세를 몰아 공화당 후보로 1960년 대선에 나선 닉슨은 당선을 의심치 않았지만, 뜻밖에도 43세에 불과한 '애송이' 존 F. 케네디에게 일격을 당하며 낙선했다.


부통령을 지낸 경륜을 강조하려 애쓰다가 진부함의 늪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닉슨의 1960년 대선 캠페인은 심지어 8년 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권에 도전할 때의 캠페인보다도 더 지루해 시간을 역행했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였다.


케네디와의 대선후보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청취자는 닉슨의 승리를 점쳤으나, TV로 본 시청자는 케네디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말로는 조곤조곤 경륜을 과시했으나, 이미지나 메이크업·퍼포먼스가 너무나 '엄중' 했던 것이다.


대선 패배로 뜻하지 않게 '낭인'이 된 닉슨은 2년 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또 낙선했다. 체급을 낮춰 도전하는 선거에서 지는 것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정치생명을 끝장낼 수 있는 치명적인 패배다. 닉슨은 한순간에 '흘러간 물'이 돼버렸다.


당시 닉슨이 얼마나 '끝난 사람' 취급 받았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66년 '야인' 신분의 닉슨이 방한했다. 미국 전직 부통령의 방한에 이동원 외무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오찬 회동을 권했으나, 박 대통령이 "그 사람은 이미 끝난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을 정도였다.


절치부심한 닉슨은 8년 뒤인 1968년 대선에 재도전했다. 공화당 의원과 주지사들은 1960년과 62년 선거에서 잇달아 패한 닉슨이 과연 본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공공연히 "이길 수 있는 후보의 등장"을 요구했다.


닉슨은 대대적인 변신으로 답했다. 준비된 원고에 의한 정제된 발언보다도 즉흥 연설(로 보일 수 있는 발언)을 즐겨했다. 대외정책 전문가로 여겨졌지만 유권자들이 '범죄와 무질서'를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기꺼이 국내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경쟁자들의 "낡은 정치인" 공격에는 일체 대응하지 않으면서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을 피했다.


피츠버그 유세에서는 'NIXON'이 인쇄된 원피스를 착용한 젊은 여성들이 아레나 통로에 늘어섰는데 이는 '닉슨 걸스'라 불렸다. 닉슨은 늘어선 '닉슨 걸스' 사이를 달려서 연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이 모든 게 8년만에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는 낡은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계산된 행보였다.


文정권 첫 총리, 1년 외유 마치고 귀국
누구나 '뭔가 달라졌겠거니' 생각은 해
국민 예상의 범위 뛰어넘어 달라져야
많은 이들 의구심, 변신으로 극복해야


문재인정권의 첫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하며 집권여당의 당대표까지 지냈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귀국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조지워싱턴대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으로 출국한지 1년만이다.


5선 의원·국무총리·당대표·원내대표·광역단체장을 역임한 경륜의 정치인이지만, 1952년생으로 71세가 된 이 전 대표가 과연 4년 뒤에 치러지는 대선에 나가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는 당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흘러간 물' 이미지를 어떻게 떨쳐내느냐가 이 전 대표 최대 관건일 것이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지고 미국까지 다녀왔으니 뭔가 달라졌겠거니 하는 정도의 생각은 유권자 누구나 다 하고 있다. 그저 그 정도 생각의 범위 내에 머무르는 변신은 변신이 아니다. '내가 알던 이낙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을 비비고 서로 대할 정도가 돼야 비로소 이미지의 쇄신이고 혁신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바꿀 수 없으리라 생각됐던 것까지 철저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더 이상 '엄중'하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유권자들의 예상의 범위를 넘어서 경륜이 주는 권위의 무게를 내려놓고, 진부함과 지루함을 없애야 한다. 말과 행동, 정책의 무게중심까지 모든 것을 '본인이 하고 싶은 것'보다 유권자의 기대에 맞추고 이를 넘어서야 한다. 닉슨이 개인적으로는 질색했던 '닉슨 걸스'를 선보였듯이, 스스로는 꺼려지더라도 주변의 과감한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닉슨이 1968년 대선에서 당선되자 누구보다 당황하고 충격을 받았던 게 박 대통령이었다. 부랴부랴 당선된 그 해에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닉슨은 방미한 박 대통령을 철저히 홀대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장관에게 "아무리 닉슨이 방한했을 때 섭섭하게 했다고 너무한 것 아니냐"며 "비통함의 연속"이라고까지 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자신을 "이미 끝난 사람"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당황과 충격을 주는 결과를 2027년 대선에서 불러올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오로지 본인이 얼마만큼 변신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지난 1년 간의 미국 체류 기간 중에 '닉슨의 변신 사례'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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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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