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음악만 좋아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장르죠.”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음악’이다. 특히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음악들이 흘러 나온다면 관객들은 더욱 쉽고 친근하게 작품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업계에서 과거의 명곡을 바탕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도 꾸준히 명곡을 앞세운 뮤지컬들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2013년 초연해 현재까지 누적관객수 55만명을 돌파한 스테디셀러 뮤지컬 ‘그날들’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등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가객 고(故) 김광석의 명곡으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청와대 경호부장 정학이 20년 전과 현재를 오가며 실종된 경호실 동기 무영의 흔적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12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0주년을 기념한 공연을 올리고 있다. 무려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작품은 현재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기준 월간 예매율 4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다시, 동물원’은 김광석이 몸담았던 밴드 동물원의 음악을 활용한다. 드라마 OST로 인기를 끌었던 ‘혜화동’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밴드의 음악들을 사용하면서 80년대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오는 9월에는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쇼 뮤지컬 ‘시스터즈’도 개막한다. 작품은 1939년 데뷔한 한국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부터 60년대 스타 이시스터즈, 윤복희와 코리아 키튼즈, 희자매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수들의 무대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해당 시대를 풍미했던 히트곡들을 연주한다.
이에 앞서 마돈나, 엘튼 존, 시아, 비욘세, 레이디 가가, 아델 등의 명곡들로 채운 뮤지컬 ‘물랑루즈!’와 아바의 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국내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한 ‘맘마미아!’ 등도 올해 공연됐다. 뿐만 아니라 조용필의 명곡을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을 위한 공모전도 최근 진행됐다. 다만 이번 공모전에서는 대선 당선작은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명곡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관객층을 두루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다. 현재 한국 공연계는 분야를 막론하고 ‘2030 쏠림 현상’이 독특한 특징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인터파크의 공연 결산 자료에서 공연 티켓 구매자의 성별은 여성이 73.2%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고, 이 중에서도 20대(24.0%)와 30대(23.1%) 여성이 전체 공연 티켓 구매자 가운데 47.1%로 절반에 달했다. 연령별 구매자 비중을 보면 30대가 32.6%로 가장 높고 이어 △20대 31.7% △40대 21.9% △50대 7.5% △10대 4.0% △60대 이상 2.3%였다.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 2030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다는 것은 앞선 작품들의 성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맘마미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작품은 지난 시즌 20대와 30대, 40대의 비율이 각각 25.7%, 26.9%, 27.5%로 균형을 이뤘다. 50대 비율도 14.3%로 비교적 높았다. 타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이 4050세대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명곡이 ‘무조건’ 흥행으로 이어질 순 없다. 그만큼 음악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그 외적인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흥행한 작품들 역시 명곡들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서사, 혹은 볼거리 등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조용필의 뮤지컬 공모전에서 대상작이 나오지 않은 건 그의 음악을 뒷받침해줄 완성도 있는 작품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악만큼 작품의 서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탄탄한 서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러 시즌에 걸쳐 흥행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