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회·전경련 주최 'K-혁신성장 포럼' …정부에서 민간 주도로 혁신성장 이끌어야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 테슬라와 같은 기업이 한국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정부가 아닌 기업과 국민이 주도하는 '민간주도 혁신성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애플, 테슬라의 성공은 선도적으로 시장·산업 생태계를 구축한 데 있는 만큼 한국도 이같은 혁신생태계를 추구함으로써 빠르게 경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영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오전 7시 30분 전경련회관에서 'K-혁신성장 포럼'을 개최하고 이 같이 주장했다.
경영학회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로 이어진 15년간 정부주도 성장 모델은 한계 상황을 맞았으며, 특히 최근 5년 한국 경제성장률(GDP)은 연평균 1.33%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기업활동 자유도가 높은 미국의 정책 기조를 취한 캐나다(5.94%), 영국(3.44%)은 G7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고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 역시 대대적인 혁신을 꾀해 애플, 테슬라와 같은 기업이 나올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달 한국경영학회 부회장은 이날 '글로벌기업의 신산업혁신생태계 경쟁과 우리의 대응 전략' 주제 강연에서 2001년 당시 시가총액 1위였던 GE(제너럴 일렉트릭)가 10년 만에 7위로 내려선 뒤, 2023년에는 104위로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2001년 당시 상위 랭크에 없었던 애플은 2011년 시가총액 2위 기업으로 올라선 뒤 2023년 현재까지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1등 기업 GE의 기업가치는 애플의 3.9%에 불과하며, IBM은 구글의 7.9%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4년부터 '혁신생태계'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기업간 위상이 뒤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혁신생태계 규모와 질적 수준이 시장/산업 내 기업 지위를 결정하고 있다"면서 "혁신 기업들은 혁신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며, 이를 토대로 혁신리더십과 경쟁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1998년 설립한 구글(알파벳)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총 256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한 달에 1건 꼴이다. 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투자 포트폴리오를 547기업에 적용하며 혁신생태계를 주도했다. 이 부회장은 "구글 퇴직자 창업 지원, 고가의 투자/인수합병, 사업 개발(내부화), 선순환시스템 구축이 구글의 신산업혁신생태계 조성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테슬라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2006년 솔라 시티 인수합병 이후 2022년 다치아(Dacia)까지 총 10건의 중대형 M&A를 실행하며 원천기술-생산기술-인프라 확보 수순을 밟았다. 이를 통해 현재 친환경-스마트 모빌리티 전주기와 전범주를 커버하는 기업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테슬라는 생태계 조성을 통한 이익 풀(profit pool) 확장/선점을 주도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신산업 혁신 선도효과를 통해 우수 인력, 선도기술 흡수를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테슬라는 나사(NASA)를 누르고 현재 전미 공학도 취업 선호 2위에 올랐다.
구글, 애플처럼 삼성, 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혁신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 주도의 지역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주도의 지역혁신시스템(RIS)은 결과적으로 인력과 매출이 서울 및 수도권에 쏠리게 돼 국가 혁신 역량 약화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 정책 및 경제 기조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앞으로는 민간 기업 부문이 주도적으로 신산업혁신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반도체 육성 전략을 예로 들며, 혁신생태계 성공은 유효소비시장과 산업전문인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해법으로 ▲글로컬 신산업혁신생태계 ▲지역혁신생태계 ▲기업가정신 대부흥 ▲창의·혁신·글로컬 인재생태계 ▲정부경영혁신 등 5대 의제를 제시했다. 한국 경제를 5대 의제 중심의 'K-혁신성장' 방안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의제 실현을 위한 'K-혁신성장 추진본부'를 구성,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시민사회, 언론, 정부, 국회 등이 참여해 민간 주도의 혁신성장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 6대그룹사 경제·경영·혁신연구원장들은 신산업혁신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일 삼성글로벌리서치 부사장은 "한국 기업들이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한다면 더 나은 시장 선점이 가능할 것"이라며 "한국은 내외부 협업이 중요하다. 스타트업 투자·육성·발굴을 비롯해 인수합병 등으로 신산업 주도권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견 HMG경영연구원 원장은 "더 이상 정부 주도로는 새 전환기를 헤쳐나가기란 불가능하다"면서 "올바른 기업 역할이 중요한 데, 구체적인 실현 모델로 산업혁신 전문회사를 언급한 것에 공감한다. 어떻게 선순환 역할을 할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염용섭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은 "SK그룹은 혁신 키워드에 기술, 휴먼 캐피탈(인적 자본) 두 가지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기술은 바깥의 회사·인재들과 같이 기술을 개발하는 방안으로 진행중이다. ICT,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의 분야에 도전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SK Inc, SK스퀘어(ICT 분야), SK이노베이션(에너지 분야) 등 3가지 섹터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 역량을 위해서는 SUNNY 조직을 통해 SK 구성원들이 필요에 따라 학습하고 역량을 축적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감덕식 LG경제연구원 부문장은 기술과 인적 자원 모두 산업 변화를 이끄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웨덴은 EQT라는 사모펀드를 통해 혁신 기업에 투자하고 아이디어를 수용해 기존 사업에 이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재 영역에서는 "머스크를 과연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경영자의 힘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며 "LG그룹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AI 쪽에 투자하고 있는데, 인재 확보가 어렵다. 중국의 경우 북경대, 칭화대에서 해외 인재를 흡수/육성해 기업에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있다. 우리도 많은 부분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민간 주도의 혁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제약 요인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봤다. 그는 "궁극적으로 산업혁신회사로 가는 것에 동의한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CVC 관련 규제들을 빨리 풀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낡은 대기업차별규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기업이 더욱 성장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적용 가능한 규제의 개수가 크게 늘어난다. 예를 들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되면 65개 규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경우 68개의 규제가 추가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추 본부장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에만 이런 규제가 적용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