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혁신위 강원특별자치도민과 대화
"'노인 비하 발언' 보도 흔들리지 말라"
"조응천·이상민 의원 공천배제 해야"
"박근혜 끌어내릴 때처럼 왜 안 싸우나"
'개혁의 딸(개딸)'로 불리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자들 뿐이 아니었다. 자칭 '양심의 아들(양아들)'들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 간담회가 열리는 장소로 속속 모여들었다. 당내 소통에 대한 제언, 정치 사관학교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요청도 있었으나 '여명 비례 투표' 발언으로 노인 비하 논란을 빚은 김은경 혁신위원장을 향해 "힘을 내라"고 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현장에서는 일부 비명계, 특히 조응천·이상민 의원의 실명을 콕 찝어 공천 배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친명(친이재명)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대두됐던 '대의원제 폐지' 요구 목소리도 높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키워드도 재차 나왔다.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2일 오후 7시 강원 춘천의 한 호텔에서 당원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지역순회 간담회를 가졌다. 애초 간담회는 지역 현안 파악과 민주당 지지율 회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원래의 취지와 달리 최근 김은경 위원장의 실언 리스크, 혁신위가 동력을 잃었다는 비판 속에서 '김은경 지키기' 결의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행사장 밖에는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단 노년 남성 한명이 팻말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민주당 당원도 국민의힘 당원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노인 폄하·비하 발언을 하고 청년과 노인을 갈라치기 하는 이간질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내부의 분위기는 이와 매우 달랐다. 김 위원장이 도착하기 전 행사장 안에서 만난 또 다른 남성은 취재진을 향해 "윤석열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은 안 싣느냐.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과 관련) 말 꼬투리나 잡는다"라는 훈수를 두기도 했다.
행사 시작 시간 직전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정식 사과를 할 것인가'란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짐에도 별다른 답을 내놓진 않았다. 대신 김 위원장은 간담회 첫 발언으로 최근 당 안팎에서 맹폭하고 있는 '노인 비하 발언 논란'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직접적인 사과까지는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언론에 계속 드러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불편하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어린아이와 몇 년 전 했던 대화를 예시로 끌어내서 무엇인가 청년들이 투표장에 올 수 있게끔 하는 투표권이 중요하단 말의 표현 과정이었는데, 그 부분을 다소 오해 있게 들으신 경우가 있다. 그것으로 마음을 상한 어르신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노여움을 푸시고 그런 뜻이 진짜 아니었음을 이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는 투표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라 다 같이 의사표현을 잘해 보자는 취지였다. 나도 곧 60세로 곧 있으면 노인 반열에 들어가는데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 정치적 언어를 잘 모르고 정치적 맥락과 무슨 뜻인지도 깊이 숙고를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취재진을 제외하면 약 50명(당원과 지역 시민)이 자리했다. 전반적으로 김 위원장의 노인 비하 논란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며 오히려 언론을 향해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부분의 지분은 김 위원장에 대한 위로, 비이재명계 대한 공세와 견제 쪽에 쏠렸다.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겼다는 한 노년 남성은 취재를 온 언론을 향해 "오늘 김은경 위원장을 추적하려고 내가 볼 때는 (기자들이) 여기 온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을 향해 "언론에 휘둘리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노년 남성은 "이재명 대표 체제 단일대오로 가야 한다. 권리당원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다시 얘기하면 권리당원의 직접민주주의 그래서 대의기관 전국대의원회의 중앙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노인 비하 발언으로 십자포화를 맞는데 대해서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흔들리지 말라"라고 했다.
자신을 평당원이자 소시민이라고 밝힌 노년 남성은 "정책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라며 "공천 룰에서 공천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딸, 민주당 강성파들이 늘 공감하고 삼삼오오 만나면 하는 얘기"라면서 "누구냐. 44명의 이재명 대표 구속을 찬성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 정당 대표 구속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 당원이고 국회의원이냐"라며 당내 '비명계'를 저격했다.
장내에서는 박수소리와 함께 "브라보"라는 호응이 터져나왔다. "조응천·이상민 의원을 공천 배제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오자 곳곳에서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도 터져나왔다. 여성 중장년들이 모여있는 한 테이블에서는 누군가 "속이 시원하다"라고 외쳤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이슈 때문에 (김 위원장이) 심적 고민이 있으시겠지만 다 알고 있다"라는 위로 역시 나왔다. 이 같은 발언을 한 노년 남성은 "어린아이와의 순수한 대화인데 '꼰대들이 어떻게 우리 미래도 책임질 수 있지?'라는 것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잊어버리고 우리 내부적으로 민주당이 변화하고 있는 모토를 스스로 내놔야 한다"라고 김 위원장을 독려했다.
사회자는 여기에 대해 "김 위원장이 뜻하지 않은 구설수를 겪은 것에 대해 공감과 위로의 말씀을 해줬다"라고 대신 화답했다.
한 젊은 남성도 "진짜 혁신이라고 한다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가 진보적 정당이니까 포용성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비빔밥에 짜장 소스가 맛있다 하겠느냐"라고 반문하고 "모두의 입맛 맞는 정당은 듣기엔 좋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칼 꼽고, 툭하면 그들과 함께 하고"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 내부의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고 치유되기 어렵다는 강력한 요청과 요구 같다"라는 사회자의 해설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투쟁심이 투철한 의원들을 공천할 수 있는 방안을 갖고 있는가"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당선돼 당에 분란만 일으키면 되겠나" "공천을 하려면 제대로 민주당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게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간담회가 막판 수순으로 가면서, 소위 '수박(비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속어) 척결'에 대한 주문 외에도 윤석열 정부 탄핵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한 중년 여성은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그립단 이야기를 한다"라며 "탄핵의 조건은 차고도 넘치는데 왜 민주당은 그들과 싸우지 않는가"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민주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투쟁을 해야 한다 생각하고 촛불집회에도 나와야 한다"라며 "예전에 박근혜 대통령 끌어내릴 때처럼 민주당이 앞에서 주도해 강하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 검찰 공화국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나. 방법이 없진 않은 것 같다"라고 했다.
행사 후 기념촬영에서는 참가자와 혁신위원이 서로를 안아주면서 '윤석열 탄핵' '김은경 혁신위 응원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 위원장은 앞서 간담회 도중 "응원하겠습니다!"란 외침과 참가자들의 박수 세례에 감격을 한 듯 울먹이는 모습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막바지에 "사즉생 생즉사하라고 아까 이쪽서 말씀 주셨다. 아이를 혼자 키우니까 죽으면 안될 것 같긴 한데, 지금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조금 회복 탄력성이 좋다. 많은 일들을 겪어 여기까지 오다 보니 좀 강인한 면이 있어서 (나를) 믿어주면 될 것 같다"라며 "오늘은 엄청 용기를 얻어간다. 진짜 절을 해도 여러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