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난자 추념식에 최초로 공식 참석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헌화한 뒤
"일본 내각 사죄 입장 표명" 촉구한
의원과 회동하는 등 공식 활동 펼쳐
국민의힘 5선 중진 정진석 의원과 배현진 의원,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 100주기를 맞이해 추념식에 참석한다. 정 의원과 배 의원 등은 추념식 참석에 앞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헌화하고, 일본 내각이 이 문제를 직시할 것을 촉구한 일본 정치인들과 회동하는 등 공식 활동에 돌입했다.
정진석·배현진 국민의힘 의원과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1일 일본 도쿄국제포럼에서 열리는 '관동대지진 100주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참석한다. 정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윤 의원과 배 의원은 각각 간사장과 간사 자격으로 참석하게 됐다. 추념식에 한일의원연맹 소속 우리 의원들이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마다 추념식을 주최해왔는데, 올해엔 관동대지진이 100주기를 맞은 관계로 우리 의원들의 참가를 공식 요청했다. 정 의원과 배 의원 등은 이러한 초청에 부응해 참석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관동대지진, 1923년 9월 1일에 발생
오늘로 100주년…당시 일본 머물던
조선인들 수백~수천명 학살 당해
일본 유명인들도 당시 '학살 정황' 증언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일본 하코네(箱根) 인근의 오다와라(小田原)를 진앙지로 해서 도쿄 등 간토 일원에 큰 피해를 입힌 진도 7.9의 대지진이다. 지진과 뒤이은 화재로 인해 10만5385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대지진 직후의 사회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됐다. 계엄령 속에서 결성된 일본인 자경단은 당시 식민지인으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조선인들을 상대로 어려운 일본어 발음을 시켜봐 못하면 바로 살해하는 등 학살 행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감독은 대지진 당시 13세였는데, 부친이 조선인이라는 헛소문이 나서 자경단이 집을 포위했으나 부친이 집밖으로 나와 일본어로 호통을 치자 자경단이 물러갔다는 회상을 했다.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도 멋모르고 자경단 결성 첫날 동참했다가, 헛된 일을 벌이는 참상을 목격한 뒤 바로 탈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의 규모는 조선총독부 도쿄출장소의 집계에 따르면 813명,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도쿄대 교수는 2534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스기오 참의원 "'우물에 독 풀었다'는
유언비어에 조선인 살해…사죄해야"
정진석 "진실 규명해 피맺힌 한 풀자"
배현진 "역사 직시하자는 발언 공감"
정진석 의원과 배현진 의원 등은 31일 도쿄 요코이미초공원에 위치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헌화하며 원혼을 추모했다. 이들은 직후 일본 의회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내각의 사죄 입장 표명을 촉구한 입헌민주당 재선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 참의원과 회동했다.
스기오 참의원은 지난 5월 참의원에서의 내각위원회 질의(우리의 대정부질문)에서 "올해는 관동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인데, 해당 재해 발생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조선인 다수가 살해당했다"며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민족 차별을 해소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매우 의의가 있는 일인 바, 올해 관동대지진 100년을 맞은 지금이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100년 전 백인에 의한 흑인 학살이 발생했던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방문해 사죄한 바 있듯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똑바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며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살해에 대해서도 정부는 이를 엄중히 받아들여 사죄해야할 부분은 사죄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동에서 정진석 의원은 "스기오 히데야 참의원께서 지난 5월 일본 의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셨다"며 "역사는 아무리 회피하고 외면한다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맺힌 한을 풀어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진 의원도 "역사를 직시하고 도망가지 말자는 스기오 의원의 대정부발언에 깊이 공감한다"며 "일본 의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조선왕실의궤 등은 반환됐으나, 군함도 징용 역사를 도쿄 산업유산센터에 기록하겠다는 일본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양국이 역사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한일 의원들의 깊은 협력을 바란다"고 거들었다.
이에 스기오 참의원은 "5월 내각위원회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다루기까지 민간과 학계의 많은 제보와 도움이 있었다"며 "여전히 일본 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수정주의'는 옳지 못하다.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헌화, 원혼 추모
추념식장서 日 유력 정치인들과 대면
'조선인 오인 학살' 다룬 영화 관람 뒤
영화 감독과도 회동, 의견 교환할 예정
정진석 의원과 배현진 의원 등은 1일에는 도쿄국제포럼에서 열리는 추념식에 참석한다.
이날 추념식에는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인 집권 자민당 7선 중진이자 전 총무대신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의원과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츠오(山口那津男) 대표,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5선 중진 오사카 세이지(逢坂誠二) 대표대행 등 일본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도 자리한다.
이후 정진석·배현진 의원 등은 이날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이해 도쿄에서 개봉하는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福田村事件)'을 관람하고 모리 다츠야(森達也) 영화 감독과 회동할 예정이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시코쿠 카가와(香川)에서 상경한 약재 행상인들이 때마침 대지진을 당한 뒤, 자경단으로부터 조선인으로 오인받아 학살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