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플래그십 전기 SUV 'EQS SUV' 시승기
"우주선이야, 차야?" 입다물기 어려운 화려한 인테리어
고급진 승차감, 준대형 크기에도 좁은 회전 반경
"전기차 시대에도 벤츠에 수억원을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 내연기관 차야 역사적으로 검증된 엔진이 뒷받침했다지만, 배터리로 가는 차는 도긴개긴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면 EQS SUV에 그 답이 있다. 태생부터 프리미엄 럭셔리를 지향해온 메르세데스-벤츠는 시승 내내 기자에게 "거봐, 나 벤츠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벤츠가 내놓은 럭셔리 전기차의 끝판왕, 'EQS 580 4매틱 SUV'를 하루간 직접 시승해봤다. 서울에서부터 충남 당진 일대를 찍고 돌아오는 약 200km 구간으로, 고속도로와 비포장 도로 등 다양한 코스를 두루 달려봤다.
EQS SUV와의 첫 만남은 덩치 큰 귀염둥이를 보는 것 처럼 상반된 느낌이 동시에 전달된다. 전장이 무려 5125mm, 전고가 1718mm나 되는 큰 차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여타 동급 차종들처럼 공격적이라거나 묵직한 느낌은 없다. 수치가 말해주는 차의 크기는 가까이 다가가 차 문을 열기까지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느낌이 어디서 오나 했더니 덩치에 안맞게 부드럽고 동글동글한 디자인 때문인 듯 하다. EQS SUV는 외관 어디에서도 직선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대부분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여성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강한데, 또 차체는 웅장하다. 벤츠 전기차가 가진 특유의 매력이지만 어느 한쪽의 느낌이 강하지 않아 호불호는 클 수 있겠다.
전면에는 벤츠 전기차 라인업의 특징인 박쥐모양 얼굴이 그대로 들어갔고, 측면으로 돌아서면 긴 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둥근 프론트 엔드에서 시작해 A-필러와 루프 라인을 따라 리어 스포일러까지 흐르듯 이어지는데, 동급 차종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역동적인 느낌이 난다.
하지만 EQS SUV의 매력은 차 문을 열기 전까지는 반의 반도 알 수 없다. 애매한 느낌을 뒤로하고 운전석 문을 열어 젖혔더니 화려한 파티에 온 것 같은 내부가 펼쳐졌다.
선명한 분홍빛 앰비언트 라이트는 차량 전면 디스플레이부터 양쪽 도어까지 길게 연결되면서 차량 내부를 감싸는데, 가속페달을 채 밟기 전부터 고급 칵테일 바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해가 지고 나서는 더욱 선명해지는데 마치 우주선을 타고 있는 듯한 착각 마저 들게 했다. 오랜기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사랑받았던 관록이 여실히 느껴진다.
계기판부터 조수석까지 끊어짐 없이 통으로 들어간 디스플레이는 10-20년 정도 후에나 탈 법한 미래차를 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QS SUV는 운전석에 위치한 디지털 클러스터와 중앙 디스플레이, 조수석 디스플레이다까지 1열 정면에만 디스플레이가 총 3개다.
조수석 디스플레이는 조수석에 승객이 타지 않으면 켜지지 않고, 조수석 탑승객이 디스플레이를 보고 있더라도 주행 중 운전자의 시야에선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인테리어 디자인 뿐 아니라 첨단 기술력 마저 고급감을 높여주는 시대가 도래했음이 느껴진다.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승객이 눈 뜨고 있을 시간을 벌어줄 수 있겠다.
운전석과 조수석만 화려한 줄 알았는데 뒷좌석 문을 열고 나니 EQS SUV가 플래그십이었단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1열 헤드레스트 뒤에 디스플레이가 달려 2열에서도 개별 콘텐츠 시청이 가능하고, 2열에서 만끽하는 앰비언트 라이트는 1열의 2배 정도 된다. EQS SUV는 어느 좌석에 앉아도 지루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차는 운전을 할 때 비로소 빛나는 법. 가속페달을 밟고 나니 왜 전기차 시대에도 벤츠를 타야하는 지에 대한 물음이 싹 가셨다. 비단결 같은 주행감과 피로도를 크게 낮춰주는 편의사양들 덕분이다.
주행감은 회생제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으로 부드럽다. 번호판이 파란색이 아니었다면 내연기관 차를 타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에어매틱 에어 서스펜션 덕에 도로 노면이 어떤 상황이더라도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현저히 작다. 전기차 특성상 밟는대로 뻗는 훌륭한 가속력은 말할 것도 없다.
안정적인 주행감은 챙기면서도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특한 기능도 탑재됐다. EQS SUV는 회생제동 강도를 총 4가지로 제공하는데, 이 중 '인텔리전트 회생제동'을 켜면 상황에 따라 회생제동 정도를 스스로 조절한다. 고속 주행 시에는 회생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앞차와의 간격이 좁거나 시내 주행 시에는 회생제동을 강력하게 걸어준다.
차가 이렇게 똑똑해도 되나. 브레이크를 밟기 전에 먼저 밟아주는 기능도 있다. 차에 탑재된 첨단 주행보조 시스템 덕인데, 카메라와 레이다, 초음파 등을 통해 주변 환경을 분석해 회전 구간이나 차선 변경시 등 속도를 줄여야하는 구간이 나오면 차가 먼저 브레이크를 깊게 눌러준다. 이 정도면 운전자가 해야할 일은 핸들을 잡고 앞을 보는 것 말고는 없다.
덩치 큰 차체에 맞지 않는 중형 SUV 수준의 회전 반경은 운전시 편의성을 크게 높여주는 요소다. 조향각을 10°까지 늘릴 수 있는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탑재된 덕분이다. 통상 카니발이나 팰리세이드 같은 큰 차체를 운전할 때 짐작하던 회전 각은 EQS SUV에선 조금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시승을 마치고 나니 그 어떤 차를 타고도 느껴지지 않았던 현실과의 괴리감이 훅 몰려왔다. 벤츠가 가진 '평생 한번 쯤 갖고 싶은 드림카'라는 수식어가 내연기관 시대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기름, 배터리, 하다 못해 공기로 차를 움직이는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벤츠는 언제나 드림카로 남을 듯 하다.
▲타깃
-사장님 차라고 다 같나? 힙한 사장님의 세련된 선택지
-요즘 준대형 SUV 우락부락한 디자인에 질렸다면
▲주의할 점
-화려하고 정신없는 분위기 딱 싫어하는 차분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