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없이는 미래도 없다”
뮤지컬 연출가 박칼린의 말이다. 박칼린 연출은 이 같은 생각을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케이팝에 적용했다.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케이팝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그 뿌리를 찾으려면 무려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 연출은 십수년 전부터 케이팝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고, 그 결과물인 뮤지컬 ‘시스터즈’(She Stars!)를 지난 3일부터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 올리고 있다. 작품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가요사에 족적을 남긴 여섯 팀(명)을 조명한다.
조선악극단의 여성 단원으로 구성된 저고리시스터를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에 진출해 한류의 원조를 이끈 김시스터즈, 60년대 걸그룹 이시스터즈, 대중음악의 전설 윤복희의 코리아키튼즈 그리고 7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휩쓴 바니걸스와 걸출한 예인 인순이를 배출한 희자매 등이 그 주인공이다.
눈길을 끄는 건 ‘케이팝 조상’ ‘케이팝 선조’라 일컬어지는 이 인물들 가운데 여전히 무대를 지키고 있는 가수가 있다는 점이다.
1971년 데뷔해 ‘파도’ ‘노을’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 등 연이은 히트곡으로 1970, 80년대 가요계를 평정했던 바니걸스의 멤버 고재숙은 쌍둥이 언니이자 또 다른 멤버이던 언니 고정숙이 2016년 암 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오랜 공백을 겪다가 지난 5월17일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새 앨범 ‘노을빛 사랑’ ‘사랑 나비’를 발매했다. 옛날 전성기 시절 목소리 그대로 짙고 호소력 깊은 고정숙의 목소리는 노래를 한껏 애틋하게 만든다. 특히 이 앨범을 계기로 그는 방송에도 활발히 출연하면서 다시 대중을 만나고 있다.
바니걸스, 숙자매와 함께 ‘걸그룹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인순이는 큰 공백 없이 현재까지 무대를 지키고 있는 가수다. 희자매의 첫 앨범 타이틀곡 ‘실버들’부터 히트를 시킨 그는 팀에서 탈퇴하고 솔로 가수로 활동해 ‘밤이면 밤마다’(1983)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긴 시간 무대에 오르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인순이는 최근까지 신곡을 내놓고, 전국투어 콘서트로 관객을 만났다. 오는 10월엔 ‘우드스탁 뮤직 앤 아트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여섯 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만든 창작 뮤지컬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공식 데뷔하고, 코리아키튼즈를 결성해 미국과 영국 무대까지 섭렵했던 윤복희는 현재 7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뮤지컬 무대에 현역으로 뛰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뮤지컬 ‘하모니’에서 김문옥 역으로 무대를 누비기도 했다.
케이팝 시장이 날로 성장하고,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무대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한 공연 관계자는 “지금 ‘케이팝의 조상’이라고 불렸던 분들의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케이팝 아이돌이 있는 것처럼, 지금 그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또 훗날 아이돌이 맞이할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라며 “지금의 원로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대중, 그러니까 젊은 층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평했다.
더해 이 관계자는 “가요사를 책임져온 원로 가수들이 현역으로서 걸어갈 수 있는 무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