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알파드 시승기
2열에 몰아준 편안함… 운전은 누가할래?
운전자 중심 신차 속 제대로 된 쇼퍼드리븐카
사장님, 회장님도 큰 차 대유행 시대엔 세단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널찍한 레그룸과 높은 천장,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 편안해지는 공간감 덕에 SUV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여전히 사장 차, 회장 차는 세단의 영역이다. '대형세단=사장 차' 공식이 일찍이 지겨워졌음에도 체면을 구길까 싶어 꾹 참아왔을 지 모르는 일이다.
토요타는 대형세단에 매여있는 사장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다. 미니밴 '알파드'를 통해서다. 일본에선 5000만원대부터 8000만원까지 다양한 트림을 제공하는 국민 미니밴이지만, 국내엔 최고급 트림만 들여오면서 '럭셔리'로 승부를 볼 작정이다.
알파드는 세단에 지겨워진 사장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을까. 지난 19일 미디어 시승행사를 통해 신형 알파드를 직접 체험했다. 특히 쇼퍼드리븐(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에 특화된 차량인 만큼, 쇼퍼드리븐이 먼저 이뤄진 후 시승이 진행됐다.
일본에 방문해 도로에서 알파드를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국내에서 마주한 알파드의 첫 인상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독보적이다. 미니밴 시장을 점령한 카니발과 스타리아에 익숙해진 국내 소비자들에게 알파드는 파격 그 자체다.
잊을 수 없는 인상인 건 사실이나 첫 인상부터 호감을 살 만한 외모는 아니다. 중앙에 박힌 로고부터 번호판 하단까지 꽉 메운 그릴 때문인 듯 한데, 강인한 인상을 완성하는 포인트긴 하지만 여백이 없어 다소 답답한 느낌도 짙다.
차체를 한바퀴 빙 둘러보니 굴곡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퉁퉁한 몸매가 인상적이다. 뒤에서 보면 직각으로 뚝 떨어진 모습이 마치 냉장고가 바퀴를 달고 굴러다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보닛 길이를 최대한 줄이고 냉장고 같은 몸매를 감수한 덕에 전장과 전고 모두 카니발보다 짧은데도 불구하고 더 웅장한 느낌을 낸다.
다만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동급 미니밴인 카니발과의 비교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일본에서야 국민 미니밴이라지만 한국엔 최고급 트림만 들여온 덕에 2열 탑승자는 문조차 직접 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쇼퍼드리븐 체험을 위해 2열에 탑승하려 하자 운전석에서 누른 버튼 하나만으로 2열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2열 좌석에 탑승하면 제대로 신세계가 열린다. 이렇게 생긴 차도 처음이지만 이런 내부 역시 처음이다. 높은 전고 덕에 확 뚫린 시야와 넓은 공간감은 기본. 180도에 가깝게 젖혀지는 리클라이닝 시트와 각종 기능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천장의 버튼들, 팔걸이에서 튀어나오는 테이블까지. 마치 비행기 일등석에 앉은 듯 했다.
가장 만족스러운 건 역시나 몸을 감싸안는 큼직한 시트다. 다리 받침을 올리고 시트를 뒤로 젖히면 침대가 따로 없다. 시트 팔 받침대에 마련된 컨트롤러를 통해 공조, 조명, 창문 등을 모두 조절할 수 있는데, 무선인 덕에 시트를 완전히 젖혀 누운 상황에서도 차량 내 모든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컨트롤러는 시트별로 총 2개가 각각 제공돼 옆자리에 앉은 비서도 사장님 눈치를 보지 않고 차량 내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
편안한 이동에만 초점이 맞춰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알파드의 팔 받침대 옆 작은 버튼을 눌렀더니 작은 테이블이 숨어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기 전 좌석 팔걸이에서 테이블을 꺼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작은 크기라도 이동 중에 메모를 하거나 업무를 보기에는 더없이 고맙다.
2열 천장에 배치된 디스플레이는 미라캐스트를 지원해 휴대폰과 연결도 가능하다. 굳이 휴대폰을 쥐고 있지 않아도 큼직한 화면을 통해 화상 미팅이 가능하고, PPT나 문서 등을 띄울 수 있겠다. 비즈니스에 최적화된 기능과 공간 구성이 꽤나 의전차량 답다.
2열에서의 승차감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숙면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소음이 거의 없고, 노면의 진동이나 흔들림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이 들리는 엔진 소리마저 없었다면 이동중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 했다. 토요타의 단단한 하체가 십분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약 3시간 가량 이어진 쇼퍼드리븐 체험 내내 운전기사를 둔 회장, 사장들이 알파드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브랜드 이미지가 럭셔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회장이야 벤츠를 타더라도 이동시 편안함과 만족감은 견줄 데가 없다.
반면, 운전석에 앉아 직접 시승을 할 때는 다소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단단한 하체와 묵직한 주행감은 "역시 토요타"를 외치게 했지만,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큰 엔진음이 자꾸 거슬렸다.
급 가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엔진음은 상당히 크게 들렸는데, 운전기사가 제아무리 운전을 잘한다한들 엔진음이 거의 들리지 않게 운전하기란 쉽지 않을 듯 했다. 쇼퍼드리븐 체험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엔진음은 1열에서 감내해야하는 듯 하다. 자칫 엔진음 탓에 회장의 지시를 빠릿하게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도 있겠다.
행사를 마치고 난 다음날 다른 행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알파드의 2열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회장, 사장의 위치에선 브랜드의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장거리 이동에서는 그들도 사람인지라 편안함이 최우선 아닐까.
큰 차 전성시대에 맞춰 새로운 선택지를 찾고있다면 9920만원이라는 알파드의 가격은 1억은 우습게 넘기는 고급 세단과 비교해 가성비 좋은 의전 차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유있는 아빠들의 패밀리 카로도 훌륭하지만, 아빠는 가족 누군가에게 운전대를 넘기지 않고서야 2열을 즐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소 슬플 수 있겠다.
▲타깃
-대형 세단 지긋지긋한 품격있는 당신
-가족들 1등석 앉히고 싶은 여유있는 아빠
▲주의할 점
-완벽한 내부를 꽁꽁 감춘 냉장고 같은 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