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한다던 李, 표결 전날 병상서 부결 호소
박광온, 본회의 당일 李 만나 비명계 요구사항 전했을 듯
李는 "통합적 당 운영" 2선 후퇴 일축…반발심 키운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병상 부결 지령'이 역풍을 불렀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반기를 든 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반란표를 던지면서, 체포동의안은 결국 가결됐다.
21일 오후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재석 295명에 찬성 149명, 반대 136명, 무효 6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체포동의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현 298명)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다. 이날 본회의에는 단식 투쟁으로 입원한 이 대표, 윤석열 대통령 미국 순방을 수행하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박진 외교부 장관, '2021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 수감 중인 무소속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표결에 참여했다.
세 명을 제외한 재석 295명 인원을 기준으로 한 가결 정족수는 148명이다. 정족수 1명 차이인 149명으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민의힘 110명, 정의당 6명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 여권 성향 무소속(하영제·황보승희) 의원 2명은 가결표가 확실시 된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120명으로, 이들이 체포동의안에 모두 찬성했다고 가정한다면, 야권에서의 이탈은 29명으로 계산된다. 무효표와 기권표를 합산하면 39명에 육박한다. 두 표 차이로 가결됐기 때문에 이 대표가 표결에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은 없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은 이번이 두 번째로, 앞서 지난 2월 당시에는 본회의에서 찬성 139명, 반대 138명, 무효 11명, 기권 9명으로 부결된 바 있다. 당시 범여권 의원들을 모두 찬성표로 가정했을 때 이탈표를 던진 야권 의원은 38명으로 추산됐다. 이중 무효·기권표가 20명이었다.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는 이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 대한 반발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통합'을 강조하며 지속해서 부결을 요청했지만, 당내 반발을 잠재우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표결 전부터 "가결 될 것"이라고 자신하며 "부결한다면 '방탄 정당'이라는 비판만 더 강해질 텐데 총선을 앞두고 비명계 의원들이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표결 직전 비명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원내대표가 이 대표를 만나, 당내 비명계의 의견과 이 대표에 관한 거취 요구사항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이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표 거취 문제, 즉 '2선 후퇴'를 언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표는 이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에게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았고, 도리어 '통합적인 당 운영'을 약속하면서 비명계의 반발심을 키운 것으로 예측된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향후 통합적 당 운영에 도움이 되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고려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도 "당대표 권한을 내려놓는 것과는 관련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표결을 하루 앞두고 체포동의안에 대한 '부결'을 호소한 것도 비명계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이 대표 얼굴로 총선을 치르는 데 대한 우려가 당내에 팽배했던 상황에서, 이 대표 입장이 기름을 부었다는 해석이다.
이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 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달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이 된 셈이다. 이 대표 스스로 그간의 검찰 수사 규탄 행보, 무기한 단식 투쟁의 목적을 '방탄'으로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비명계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스스로 가결해달라고 말하지 못할 망정 부결을 호소한 게 역풍을 불러일으켰다"라며 "가결될 거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실제 비명계 일부 의원들은 동료 의원들에 가결표 행사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비명계 의원인 이원욱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갑자기 부결해 달라고 하니 황당하고 당황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원고에도 없는 내용으로,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그 자리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 '정치 수사에 대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라고 얘기했다"며 "정치인의 말은 법과 같다. 말을 바꾼다 한다면 '미안하다. 그때는 이러이러한 상황이었다'고 철저하게 반성해야 신뢰가 찾아진다"고 했다.
조응천 의원도 지난 19일 YTN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가결 입장을 직접 밝히는 게 낫다면서 "그 말씀을 하심으로써 여당이나 대통령실에서 조롱하고 방탄 단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가결하더라도 분열의 길로 가지 않을 방법은 대표가 6월에 말씀하셨듯 가결해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로서 당 내홍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리더십에 큰 타격이 입혀지면서 사퇴론도 본격적으로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표 단속에 공을 들여온 친명(친이재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탈표를 던진 비명계를 겨냥해 "당대표의 자리를 찬탈하고자 검찰과 야합해 검찰 독재에 면죄부를 준 민주당 의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서로 눈빛 교환하며 은밀하게 뒤통수치지 말고 떳떳하다면 나는 이런 이유로 가결에 찬성했다고 당당하게 밝히라"고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