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세 차례와 달리 외부 충격 없는데 단행
불법 적발 이후 차별적 제도에 불만 최고조
투자자 환영 속 제도 개선 방향·속도 ‘주목’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가 전면 금지되면서 금융당국이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에 두 손을 든 형국이다.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대표적인 차별적 제도로 비판해 왔음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당국이어서 이번 결정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시적이나마 전면 금지 조치에 대해 환영의사를 밝히면서도 중요한 건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라며 향후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도 감지된다.
금융위원회가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금융위원회를 개최하고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전 종목의 공매도를 내년 6월 말까지 금지하는 방안을 의결하고 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다시 주식을 사서 주식을 빌린 곳에 갚는 투자 방식으로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판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다시 사들여 주식을 상환해 차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국내에서 공매도 전면금지가 단행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셌던 지난 2020년 3월에 이뤄졌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급락장 직후 증시 안정을 위해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으나 지난 2021년 5월 3일부터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등 대형주에 한해 제한적으로 공매도를 허용해 왔다.
불법 공매도 적발에 더 이상 못 버틴 금융당국
하지만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상환기간과 담보비율 등에서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에 비해 차별을 받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해 왔다.
개인 투자자들은 최대 90일까지만 주식을 빌릴 수 담보 비율도 120%로 공매도 대차 기한이 없고 담보비율도 105%인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에 비해 차별적인 조건을 적용받아왔다.
여기에 더해 불법 공매도 적발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도 여전히 많고 공매도 투자자 보호도 허술한 상황이라는 것이 대다수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이미 지난달 4일 ‘증권시장의 안정성 및 공정성 유지를 위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관한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5만명 동의를 달성하면서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게 됐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공개일로부터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며 심사를 거쳐 채택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여기에 최근 불법 공매도 행위가 적발된 것도 금융당국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달 15일 글로벌 투자은행(IB)인 BNP파리바·HSBC가 수개월 동안 국내 주식 110개 종목에 총 56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현행 법상 주식을 빌려 파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돼 있고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무차입 공매도’는 금지돼 있다.
장기간 이뤄진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불법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었다.
이에 그동안 누적돼 온 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기에 이르렀고 금융당국으로서도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와 함께 ‘기울어진 운동장’의 근본적인 해소 추진을 목표로 무차입 공매도 방지 및 조사, 적발 및 처벌 강화를 천명한 것도 제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공매도 실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시장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폭 넓은 의견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무차입 공매도를 방지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필요시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입법화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강조해 온 당국 태도 변화 이유는
그동안 금융당국은 공매도가 불법적 거래 기법이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기가 문제일뿐 공매도 재개가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또 개인투자자들이 요구해 온 기울어진 운동장의 제도 개선 요구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 왔는데 최근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는 공매도 제도에 대해 “원점에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모든 제도 개선을 해 보겠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불과 보름여 전인 지난달 11일 열린 금융위 국감에서 개인·기관·외국인의 담보비율을 일원화하는 방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입장이었다.
그 사이에 불법 공매도 적발 사건이 발표되면서 그동안의 입장에 변화의 기류가 포착되기 시작했고 결국 공매도 금지 조치와 전면적 제도 개선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공매도와 주가간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공매도가 관련주들의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개인투자자들과 달리 금융당국은 연관성이 없다고 반박해 왔다.
최근 금감원이 적발한 BNP파리바와 HSBC의 불법 공매도 종목에는 카카오가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이 불법을 저지른 기간 카카오 주가는 47%나 하락하는 등 인과 관계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음에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게 당국의 스탠스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카카오 주가 하락과 불법 공매도 간 연관성을 묻는 질의에 “기업공개(IPO) 이후 시장 상황이 많이 변하기도 했고 카카오 내부 임직원들이 국민들 눈높이에 맞지 않는 주식 처분을 한 것도 있다”며 “과학적 인과관계로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하락했다고) 입증하긴 어렵다”고 답변했다.
당국이 상호 인과관계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이례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앞서 공매도 전면 금지가 이뤄졌던 3차례와 달리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조치가 단행됐다는 점에서 결국 투자자들의 거센 요구에 금융당국이 두 손을 들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긍부정 엇갈린 평가 속 소통·조율 ‘관건’
이번 금융당국의 조치에 개인 투자자들은 환영 의사를 밝히면서 제도 개선 논의에 대한 방향과 속도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함도 엿보인다.
코로나19 초기 당시 급락장에서 전면 금지 조치가 시행됐을때도 정작 중요한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과 금융당국이 생각하는 제도 개선에 대한 간극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를 어떻게 메워나갈지가 관심사다.
이와함께 제도 개선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상황이다. 그동안 공매도 금지 조치가 제도의 순기능마저 훼손할 수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기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이들은 공매도 금지가 시장 거래를 위축시키고 가격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는 만큼 금지 조치보다는 불법 공매도에 대한 모니터링과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금융당국이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았던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보다 중요한 건 내용과 태도로 내년 6월 말까지 구체적인 제도 개선 로드맵을 제시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