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0억 원 들인 행정전산망 마비, 사흘 만에 복구…53시간 만에 "네트워크 장비 이상" 원인 발표
전문가들 "새올 시스템 먼저 패치하고 나서 다음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등 순차적 분리대응 했어야"
"여러 가지 동시에 손보면서 복합장애 돼 문제 커져…주변에 문제 생길 수 있는 분야 종합 점검해야"
"온라인에 문제 생겼을 때 오프라인 행정 발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전환 계획 등 업그레이드 시급"
지난 17일 발생한 정부의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발생 사흘만에 정상화됐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장애 원인을 찾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디지털 재난 상황'으로 진단하고, 무엇보다 순차적으로 분리 대응을 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를 동시에 손보면서 복합 장애가 발생해 문제가 더욱 커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온라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오프라인 행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획 등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20일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8시 40분께 전국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공무원이 사용하는 행정전산망인 '새올'이 일제히 마비됐다. 행안부는 17일 "각종 증명서는 정부24를 이용하면 된다"라고 안내했지만, 18일 오후 2시께에는 대표적인 정부 온라인 민원 플랫폼 '정부24'도 함께 마비되면서 사태가 더욱 확대됐다.
지난 2002년 11월 전자정부가 출범한 뒤 행정전산망이 장기간 마비된 건 초유의 일로, 부동산 계약이나 차량 명의 이전에 필요한 인감 증명 서류를 떼지 못하는 등 일상 생활과 직결된 민원 업무 중단으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정부가 사태 당일 시스템을 복구하지 못한 데 이어 원인 규명까지 더뎠다는 비판이 나온다. 행안부는 53시간이 지난 19일 오후에 가서야 마비 사태 원인을 발표했다. 이번 사태 원인으로는 행정전산망의 공무원 인증(GPKI) 시스템 일부 네트워크 장비 이상이 지목됐다. 이 가운데 트래픽을 분산해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L4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장비 고장이 구체적으로 왜 발생했는지, 오류 상황에 대비한 백업시스템과 같은 '이중화 작업'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자 정부를 구현한다면서 막대한 예산을 썼지만 막상 '디지털 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은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새올'과 '정부24'의 서버를 관리하는 행안부 국가기관 정보자원관리원에 올해 투입된 예산만 무려 4600억원에 달한다. '2024 예산안 사업설명 자료'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 규모도 올해보다 약 17%(790억원) 늘어난 5400여억원이 책정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국가가 관리하는 행정망 마비는 지난 3월 법원전산망 마비, 6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오류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3번째이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아직도 원인이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3일씩이나 시스템이 작동이 안된다는 건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사고들에 대한 예고"라며 "새올 시스템을 먼저 패치하고 나서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다음에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 하고 또 문제가 없으면 인증 서버를 업그레이드 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분리 대응해야 되는데,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를 동시에 손보면서 복합 장애가 돼 문제가 더욱 커졌다고 본다"라고 조언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이번 행정전상망 먹통 사태는 디지털 재난이라고 봐야 한다"며 "결국 서비스는 전체가 다 연결돼 이뤄지는데 그동안 보호해야 될 핵심으로 삼았던 코어 위주로는 잘 보호했지만 그 주변에 연결돼 있는 인증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던 만큼 주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분야는 없는지 종합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또 "정부 서비스를 24시간 365일 무중단 서비스를 하느라 애를 쓰는 것보다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작업이 있을 때에는 서비스를 중단시키고 안정적으로 해 본 다음에 테스트를 하고 다시 서비스를 재개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각종 민원 서비스가 다 이뤄지다보니 온라인이 멈추니 오프라인도 다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온라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오프라인 행정이 발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전환 계획 등 여러 절차를 점검해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행안부는 이번 행정전산망 마비사태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행안부는 주민센터에서 처리되는 납부, 신고 등 공공 민원에 대해서는 납부 기한을 장애가 복구돼 납부할 수 있는 시점까지 연장한다. 행안부는 또 확정일자 등과 같이 접수와 함께 즉시 처리해야 하는 민원은 민원실에서 먼저 수기로 접수를 한 후 20일자로 소급해 처리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