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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와 '청년비하 현수막'에 담긴 민주당의 꼰대적 시선 [데스크 칼럼]


입력 2023.11.21 11:01 수정 2023.11.21 15:22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민주당 "정치 모르겠고, 나는 잘살고 싶어" 청년 폄하 현수막 논란

"민심은 모르겠고, 나는 당선되고 싶어",

"2030은 모르지만, 표는 받고 싶어"의 오만한 무례

페이커로 대변되는 2030의 '열정과 겸손' 배워야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원칙과 상식 민심소통: 청년에게 듣는다’ 간담회에서 2023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 현수막 관련 공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청년 비하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의 현수막 문구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2030 유권자들을 경제와 정치에는 관심 없지만 돈만 밝히는 무뢰한 취급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을 보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듯 하다. 실제 민주당의 현수막 문구는 지금의 청년세대를 욕심만 많은 무지한 존재로 보는 오만한 꼰대의 관점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런 오만한 꼰대의 관점을 극복하고 성공한 2030세대의 아이콘이 있다. 바로 지난주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e스포츠계의 메시'로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이다. 나이는 불과 27살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에서 그가 가진 명성은 "손흥민이나 방탄소년단(BTS)에 필적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메이저리그의 류현진 선수도 "미국에서는 나보다 페이커의 인기가 더 많다"고 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의 연봉은 약 7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내 프로 스포츠 통틀어도 최고다.


하지만 그가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성장하기까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게임을 좋아하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거나 PC방 폐인처럼 보는 외부 시선이 그다지 곱지 못했던 탓이다. 그렇다고 경제를 책임져 줄 부모의 '빽'도 없었다. 페이커는 어릴적 15평 아파트에서 할머니,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2학년때 학교를 중퇴하고 프로게이머 세계에 발을 디뎠다.


정치적 시련도 견뎌야 했다. 이 시기 정치권은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의 강제적 셧다운제를 실시했고 게임 산업을 술 담배와 같이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게임 중독법'을 내놨다. 이 모든 상황을 스스로 개척하고 뜻하던 바를 이뤄낸 것이다. 지금 전세계 팬들은 유튜브로 롤드컵을 보며 그의 대활약에 감탄하고 있다.


더욱 눈여겨 볼 부분은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인 양 말하는 기성세대의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 그는 '프로게이머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항상 발전하려는 자세, 겸손한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길게는 하루 10시간까지 훈련을 거듭하면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적과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상대 팀을 존중한다. 이번 대회에서도 상대인 중국팀을 도발해달라는 관계자들의 요청에 그는 항상 고개를 저었다.


이런 자세는 그의 팬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팬들은 롤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우승을 기원하며 좋은 운을 모은다는 취지로 길거리 쓰레기를 줍고 헌혈에 참여하는 '선행 쌓기' 인증 게시글을 자발적으로 올렸다. 이쯤되면 '정치 몰라도 잘 살았고', '경제 몰라도 돈 많이 번' 주인공이 페이커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롤드컵에서 우승한 T1이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리고 있다.ⓒ연합

페이커로 예를 들었지만, 이것이 현재를 사는 2030세대의 모습들이다. 30년 후 자신의 삶의 가치를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와 끈기의 시간을 보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바로 우리나라 청년들이다. 하지만 민주당 현수막은 2030세대가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나 요행을 바라는 것처럼 표현했다. 함부로 자기들 잣대로 2030세대의 노력을 폄훼한 것이다.


특히 민주당 현수막의 더 큰 문제는 그들은 단지 2030을 표로만 보고 있다는 거다. 2030세대 청년들의 인격이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도 벌게 해 주고 잘 살게 해줄테니 표를 달라는 거다. 표 장사를 위해 '삼포세대'에서 'n포세대'가 된 청년들의 절박함을 홍보에 이용한 것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민심은 모르겠고 나는 당선되고 싶어", "2030은 모르지만 표는 받고 싶어"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민주당은 이제라도 다시 한번 2030 청년들에 대한 모욕적 표현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의 반대편 사람들도 존중하기 바란다. 특히 자기 지지층 밖 사람들을 이런 편협한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국민들이 민주당과 생각이 다르다고 비아냥까지 들어서야 쓰겠는가. 제발 이번 일을 계기로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2030세대와 소통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펴길 기대한다.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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