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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제로’ 향한 친환경선박의 항로


입력 2023.11.23 06:06 수정 2023.11.23 06:06        데스크 (desk@dailian.co.kr)

인간 탐욕이 오염시킨 바다

과거의 빚 갚는 자세로

최첨단 기술 총동원해

무탄소 시대 선도해야

차세대 친환경 기술들이 적용된 한화오션의 그린선박 사양 LNG운반선 조감도. ⓒ 한화오션

1950년대 초 멕시코만의 한 어촌. 무려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은 85일째 먼 바다로 나가 마침내 커다란 청새치를 낚았다. 하지만 어찌나 힘이 센 녀석이었던지 노인의 배를 끌고 사흘간이나 이리저리 내달렸다. 노인은 사투 끝에 포획한 청새치를 배 옆에 매달고 돌아오지만, 이번엔 상어 떼에 몽땅 뜯겨 앙상하게 뼈만 남고 말았다. 기진맥진한 노인은 쓰러져 잠들었으나 또다시 사자 꿈을 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인간에게 내재한 불굴의 의지를 그려낸 명작이다. 동시에 어업과 선박 발전사의 관점에서 무동력선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교재이기도 하다. 실존주의적 인간 의지를 ‘불굴의 탐욕’으로 착각한 후손들은 프로펠러가 달린 동력선을 끌고 나와 기어코 청새치와 상어를 멸종위기로 몰아넣었다. 더불어 바다를 쓰레기와 매연으로 오염시켰다.


2023년 옥포만의 한화오션 조선소. 영하 163℃ 상태의 액화천연가스(LNG) 같은 극저온 가스를 다루는 예민한 첨단설비를 쉴 새 없이 가동하고 있다. LNG가 증발할 때 다시 액체로 되돌리거나 암모니아를 분해해 수소를 뽑아내는 등의 고난도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중후장대산업의 상징인 조선소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 같은 요술을 연마하는 목적은 친환경 에너지를 실제 선박에 적용할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선 슬로싱(sloshing) 연구센터도 24시간 돌며 데이터를 축적한다. 슬로싱은 LNG 같은 액체화물을 운송할 때 선박 움직임에 따라 출렁거리며 화물탱크 벽을 들이받는 현상을 말한다. 선박균형 상실이나 화물탱크 파손 및 유출사고를 막으려면 철저한 사전 연구와 설계가 필요하다. 또 운송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기화하는 LNG를 재액화하거나 운반선 연료로 써먹는 기술이 없으면 속절없이 허공에 날려야 한다. 기존 선박유와 LNG를 동시에 연소시키는 이중연료(dual fuel) 추진엔진을 고안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해양시대의 최우선 화두는 친환경, 친해양이다. 환경문제에 관한 한 미래를 말하기 전에 과거에 진 빚부터 갚는 자세로 임하는 게 합당하다. 산업혁명이 촉발한 기계화, 첨단화의 그늘에서 함께 자라난 탐욕과 교만의 대가는 꽤 참혹했다. 겨우 200여년 만에 지구 환경은 한계에 내몰렸고 특히 자연 정화 장치였던 바다까지 병세가 심각해졌다. 노인이 청새치를 쫓던 시절은 갔고 기후재앙은 일상적 체험학습이 됐다. 이제라도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만회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기후변화 대응은 국경이나 육해공을 분리하는 게 무의미하므로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우리만 열심히 해봐야 주변 인구 대국들이 비협조적이면 숟가락으로 바닷물 퍼내기가 된다. 그동안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설정된 공동의 목표는 이산화탄소(CO2)를 포함한 온실가스의 순 배출량을 2050년까지 영(0)으로 만드는 일이다. 흔히 ‘넷 제로(Net Zero)’라 부른다. 넷 제로를 달성하면 산업화 이전에 대비해 지구 표면온도 상승분을 1.5℃ 이하로 막아낼 수 있다는 기대치다.


선박분야 역시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해양관련 업종이 각자 따로 놀지 않고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선주와 선사는 친환경 선박을 운용하고, 조선업체는 다양한 대체연료 선박을 만들고, 엔진업체는 그에 맞는 엔진을 개발한다. 또 항만에선 친환경 선박에 이용료 및 세제 혜택을 주고 금융회사들은 선박금융과 보험료 책정에 이를 반영하는 식이다.


현시점은 ‘2050 넷 제로’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에 해당한다. 화석연료를 단숨에 폐기하면 모두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해야 하니 일단은 저탄소를 거쳐 무탄소로 가는 단계별 로드맵이 합리적이다. 그 중간단계 연료가 LNG, 암모니아, 메탄올 등이다. 다만 중간단계라 해도 쉬운 건 하나도 없으니 밤낮으로 마법 같은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연에너지를 활용하거나 기계적 효율을 높일 에너지절감장치(ESD) 아이디어도 백출하고 있다. 돛단배처럼 로터세일이나 연을 달아 풍력을 이용하는 방식도 있고, 선박형상을 개선해 저항을 줄이거나 추진시스템에 보조장치를 달아 연료소모를 줄이는 방식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머글 세상에서 효과를 낼 수 있으면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무탄소 미래선박의 종착점은 어떤 모습일까. 일단 전기추진 선박이 가시적 목표다. 다만 선박은 체중과 운항시간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대형선박용 에너지를 탄소 없이 생산해낼 해답은 수소에 있다. 이미 한국형 잠수함(장보고-III 배치-2)에도 장착되기 시작한 수소전지는 산소와 결합 과정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물을 배출한다. ‘맹물로 가는 배’와 순서는 역방향이지만 결과는 비슷한 꿈의 선박이다. 수소를 연료전지 형태로 쓸지, 내연기관 형태로 쓸지는 경제성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적어도 선박분야에서만큼은 추가적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친해양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또다시 과학은 길을 찾고 경제는 효율을 뽑아낼 것이다. 과학에 반하는 선동, 경제를 무시하는 허세에 휘둘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해양시대의 주역이다. 그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오늘 밤에도 사자 꿈을 꿀 것이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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