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는 게 당연해진 시대잖아요. 한 역할에 여러 배우가 캐스팅되니까 충분히 가능하죠.”
최근 진행된 한 뮤지컬 배우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에도 뮤지컬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있었지만, 멀티캐스팅이 보편화되면서 겹치기 출연이 덩달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봐야할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동시기 공연하는 작품들에 복수 출연하는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뮤지컬 업계의 고질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보다 배우의 힘에 의존하는 국내 뮤지컬계의 특성 탓에 탄탄한 실력과 티켓 파워를 가진 스타 배우 또는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스타를 끌어오기 위해 더블을 넘어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까지도 일반적인 상황이다. 현재 공연 중인 인기 뮤지컬 캐스팅만 보더라도 ‘드라큘라’와 ‘오페라의 유령’ 등은 트리플, ‘몬테크리스토’와 ‘레베카’ 등은 쿼드러플 캐스팅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원캐스트로 진행되는 작품은 손에 꼽힐 정도다.
작품에서 여러 명의 배우가 하나의 역할을 분업해 맡는 시스템이다 보니 배우들에겐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여러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세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게 된 최재림의 경우도 ‘오페라의 유령’은 쿼드러플 캐스팅, ‘레미제라블’과 ‘라스트 파이브 어스’도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된다.
배우 풀이 적은 것도 겹치기 출연의 큰 요인 중 하나다. 사실상 관객을 동원하면서 주연급 배우로 내세울 만한 인물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제작사들의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와 달리 국내 뮤지컬계는 길어야 2~3개월에 걸쳐 관객을 만난다. 공연이 짧은 기간 진행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임팩트 있게 티켓을 팔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배우를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런 배우는 손에 꼽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배우가 능력이 되어서 한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냐’ ‘잘하는 배우에게 여러 작품이 배정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의 의견도 나온다. 그런데 겹치기 출연의 피해는 결과적으로 관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무리 배우가 작품마다 온전히 그 역할을 소화해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관객의 몰입도는 떨어진다.
장기적으로 배우의 컨디션과 건강에도 그다지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한 뮤지컬 배우는 “제작사들이야 수익을 내야 하니 인지도 있는 배우를 쓰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롱런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 여러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면서 “다른 캐릭터를 오가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고, 목에도 쉼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면 롱런하는 배우가 될 수 없고 상품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컨디션 난조는 곧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한 관객들에게도 피해인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