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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회동·당내 소통 꽉 막힌 이유는…이재명 '사법 리스크'? [정치의 밑바닥 ①]


입력 2023.12.10 18:00 수정 2023.12.10 18:55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예전엔 상대당 대표 칭찬하는 논평 나오고

대권 경쟁자도 마주 앉아 나라 일 논했지만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 아냐" 동맥경화

"혐의, 민주화운동 아니라 그냥 개인 비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역 갈등에 세대 갈등·젠더 갈등까지 우리 사회의 반목과 분열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해야할 정치는 길을 잃었다. 정치 주체 자신들의 갈등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정치의 밑바닥'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같은 현상의 근원에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제1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문제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대 국회 4년 임기의 사실상 마지막해가 저물고 있는데도 정부·여당과 야당은 양보없는 '강대강 대치'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는 매일같이 상대방을 향한 독설과 비판을 날리며 국민 여론에 호소하고 있지만, 민심은 추운 세밑 날씨만큼이나 냉담하기만 하다.


주말·휴일인 9~10일 이틀 간에도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민폐 이재명 대표는 법의 심판을 차분히 준비하시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적반하장, 국민께 부끄럽지 않느냐"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실패를 이제 그만 인정하라"고 포문에 불을 뿜었고, 민주당은 이에 질세라 "윤석열정부는 실패한 교육정책을 사과하라" "음주운전과 폭력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수준부터 검증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한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거부할 것"이라고 맞섰다.


새정치 부대변인 "새누리당 대표의 홍보
동영상 참신…선의의 경쟁 벌이길 기대"
박근혜~문재인 만나 "함께 하고, 웃는
모습 보이면서 합의에 이르는 게 중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2015년 10월 청와대에서 회동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원래부터 여야가 이토록 맹목적 상호 비난을 쏟아내던 관계는 아니었다. 시계바늘을 8년 전으로 돌려보면 2015년 3월, 허영일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홍보 동영상이 참신하다"는 칭찬 논평을 냈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당시 논평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바바리 코트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홍보 동영상은 참신하다.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2030대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은 참여민주주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지'만으로 젊은이들의 아픈 현실이 치유되지는 않지만, 정치권의 '진심'과 '노력'이 전달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김무성 대표의 홍보 동영상을 계기로 여야 모두가 '젊은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선의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민주당의 전신인 제1야당 부대변인이 청년층을 겨냥한 집권여당 대표의 홍보 동영상 촬영을 칭찬하면서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다짐할 정도로, 여야가 그야말로 서로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문화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마주앉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해(2015년) 10월, 직전 대선에서 자신과 대권을 놓고 다퉜던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회동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회의실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문 대표를 맞이했다. 박 대통령이 "서로 잘 통하면 그만큼 나라 일도 잘 풀리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덕담하자, 문 대표도 "함께 하고, 또 웃는 모습을 보이고, 뭔가 합의에 이르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비단 여야 간에만 대화와 조정 시도가 이어졌던 것만도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당은 안철수 의원이 "인간이 만든 조직 중에 가장 복잡한 조직"이라 평할 정도로 늘상 내홍이 있기 마련인데, 당시에는 정당 지도자들이 내홍 수습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서 얘기 나누고 문서화 하는 것까지도 주저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내홍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같은해 7월, 문재인 대표는 당내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와 시내 한 호텔에서 전격적인 심야 회동을 가졌다. 문 대표 측에서는 김성수 대변인, 이 원내대표 측에서는 정기남 원내대표실 부실장이 배석했다.


문 대표와 이 원내대표는 회동을 마친 뒤 △당무 전반에 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 원내대표가 당무에 복귀하기로 한다 △문 대표는 당직 인선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당무 운영과 관련해 원만히 소통하기로 했다는 3개 항의 합의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당내 비주류와의 소통을 단순히 '사진 한 장 남기기' 용도로 전락시키지 않고 '당원이 직접 선출한 당대표'라며 거만을 떨지도 않은 채, 당대표가 당무에 있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이를 문서로도 남긴 것이다. 물론 이 약속이 이후 지켜졌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만큼 소통과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당대표가 비주류 수장 직접 만나서 '당직
인선 과오' 인정하는 문건도 남겼는데…
'사법 리스크' 탓에 만남 가능성 꽉 막혀
"일주에 며칠 법원 가는데 이런 상태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가 지난 2015년 7월, 국회본청 당대표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로부터 강산도 아직 채 변하지 않은 8년이 흘렀는데, 정치의 모습은 살풍경(殺風景)스럽게 달라져버렸다. 상대당의 대표를 칭찬하는 논평은 상상하기 어렵게 됐고 대통령과 야당대표의 만남도, 제1야당 대표와 비주류 수장의 만남도 성사시키기가 극히 곤란한 정국이다. 문제의 근원에는 역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깔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했으며, 이재명 대표는 같은해 8월에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가 제1야당 대표가 된지 1년이 넘도록 두 사람이 회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실이 직접 이유를 밝힌 적은 없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올해 1월 이 대표의 잇단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도 "이 대표가 본인의 사법적 문제부터 처리한 다음에 (회동을) 하는 것이 맞다"고 거들었다.


당내 갈등 수습을 위한 회동이 불발되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론에 대해 "사진 한 장 찍고 단합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면 그다지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 전 대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향해 "민주당이 뭔가 변화하려고 해도 그 이미지가 강하면 국민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 아니냐"라며 "일주일에 며칠씩 법원에 가는데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했다. 결국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탓에 과거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처럼 '통큰 만남'을 가지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정치의 풍경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살풍경으로 바꿔놓을만큼 정당사상 유례없는 것은 맞다는 관측이다.


제1야당 대표가 △공무원자격사칭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수 건의 전과를 보유하고, 대장동·성남FC·백현동·위례신도시·위증교사 등 수 개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와 배임·부패방지법·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해충돌방지법 등 무수한 혐의로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 자체가 초유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이와 관련 "예전에 야당 지도자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아서 옥고를 치르는 것들은 익히 우리가 봐왔던 민주화의 과정이었지만, 이것은 이재명 대표의 민주화운동의 일환이 아니라 말그대로 그냥 본인의 개인 비리"라며 "'김대중 대통령도 하셨는데 왜 이재명 대표는 못하느냐' 이렇게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뿌리고 다니는 것은 가짜뉴스"라고 규정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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