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선전증시 올해 6%·17% 급락…G20 중 유일무이
中, 기준금리 인하 등 부양책 잇따라 내놔도 약발 못 받아
부동산 시장 불안·내수 부진 등 대형 악재들 켜켜이 쌓여
上海 3000선 무너지자 기금 투자확대 등 증시 부양 나서
중국 증권시장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잇따라 경기부양책을 내놔도 중국 증시가 약발을 받아 반등하기는커녕 맥없이 추락하는 형국이다.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Country Garden))이 지난 8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는 등 부동산발(發) 위기 등으로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탓이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21일 중국 상하이(上海)종합지수는 전날보다 16.61포인트가 오른 2918.71, 선전청펀(深圳成分)지수는 98.65포인트가 상승한 9257.09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연초보다 6%, 선전청펀지수는 연초보다 17%나 곤두박질쳤다. 상하이·선전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300개 블루칩으로 구성된 CSI300 지수도 이날 3332.01로 장이 마감돼 연초보다 14%가량 급락했다.
이로써 중국 증시의 주가 수준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 초반보다 낮다. 특히 중국 증시는 올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G20 가운데 연초 대비 주가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 거의 유일무이하다.
지난해 말에만 해도 중국 주식시장은 고강도 방역정책인 ‘제로 코로나’ 폐지에 힘입어 경제가 활기를 되찾으면서 올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중국지수가 올해 1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막상 뚜껑을 여니 MSCI 중국지수는 올들어 18%나 자유낙하했다. 같은 기간 MSCI세계지수가 19%가량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증권시장이 크게 휘청거리고 있는 것은 대형 악재들이 얽히고설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바람에 경제 사정이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지정학적 긴장과 부동산 위기, 내수 부진, 수출 둔화 등의 대내외 악재들이 중국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등 여러 부양책을 쏟아냈지만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되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급기야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걱정해야 할 만큼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실망한 외국인들은 투자금을 빼내가고 있다.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연초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기대감에 반짝 유입세가 늘었지만 그 효과가 예상보다 부진하고 부동산 시장의 불안 가중 등의 대형 악재들까지 흘러나오면서 순(純)유출(유출이 유입보다 많음)로 돌아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9월 중국 내 자본 순유출 규모는 전달보다 80% 가까이 늘어난 750억 달러(약 98조원)를 기록했다. 2016년 말 이후 최대 규모다. 외국인의 대(對)중국 직접투자(FDI)도 지난해 2분기부터 시나브로 감소해 올해 3분기에는 사상 처음 118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신규 주식펀드들이 외면받고 있다. 수익률을 떨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차라리 현금을 갖는 게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컨설팅업체 지벤 어드바이저스(Z-Ben Advisors)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뮤추얼펀드 모금액은 1520억 위안(약 27조 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모금액은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며 지난해 연간 유입액과 견줘 반토막이 난 상태다. 펀드 판매도 부진하고 부양책도 먹히지 않으면서 리스크가 없는 저축만 늘었다. 인민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가계 총저축은 134조 6000억 위안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해만 14조 7000억 위안 규모가 불어났다.
여기에다 11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부진하고 부동산 시장 회복세도 여전히 저조하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1월 제조업 PMI는 지난달보다 0.1포인트 하락한 49.4로 집계됐다. 예상치 49.7에도 못 미쳤고 기준치인 50도 넘지 못했다.
제조업 PMI는 4월 49.2를 기록한 뒤 8월까지 5개월 연속 50 아래에 머물다가 9월 50.2로 간신히 반등했다. 하지만 한 달 도 안 돼 10월 또다시 50 밑으로 떨어졌고 지난달까지 2개월 연속 50 아래에 머물렀다. PMI는 50보다 높으면 경기확장, 낮으면 경기위축 국면을 의미한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책임지는 부동산 시장은 침체 일로다. 부동산 거래 데이터를 제공하는 중국지수(指數)연구원은 지난달 중국 상위 100대 부동산기업의 월간 매출이 지난해 11월보다 29.2%, 올해 10월보다 0.6% 각각 줄었다고 밝혔다. 위축 추세가 지속되면서 올해 1~11월 매출은 지난해년 같은 기간보다 14.7% 감소했다
이런 판국에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 5일 중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무디스는 경제회복세가 예상보다 약하고 국내 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중국 국가신용등급에 추가로 변화를 주지 않은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중국기업 실적도 악화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MSCI 중국지수 편입 기업 가운데 30%가량은 올해 3분기(7~9월)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MSCI 중국지수 기업들의 총 주당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 줄어 4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텅쉰(騰訊·Tencent) 등 기술주의 경우 비교적 선방했지만 전체적인 순이익 성장률은 15.2%로 2분기(34.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데이비드 차오 인베스코자산운용 전략가는 "경제를 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추가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국이 반간첩법을 강화하며 외국 기업들을 옥죄는 분위기도 ‘셀 차이나’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3월엔 미 기업실사 업체 민츠그룹, 4월엔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 현지 사무소가 중국 내 중요한 정보를 넘겼다는 등의 이유로 중국 공안(경찰) 당국의 강제 수사를 받았다.
다급해진 중국 정부가 증시부양에 나섰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0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4개월 연속 동결했다. 경기 침체 흐름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하지만, 인하에 따른 외국 자본이탈과 위안화 약세를 더 우려한 까닭이다.
인민은행은 앞서 15일에는 연말·연초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인민은행은 정부채권 발행 등 단기 요인의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 1조 4500억 위안 규모의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를 운용한다고 밝혔다.
MLF는 인민은행이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인민은행은 시중 유동성 부족이 우려되면 MLF를 확대해 유동성 공급을 늘린다. 이번에 운용하기로 한 1조 4500억위안 규모의 MLF는 만기도래한 6500억 위안 규모 MLF의 만기를 연장하는데 쓰고 8000억 위안을 추가 투입하기로 하면서 마련된 것이다. 올 들어 최대 규모다.
중국 정부는 사회보장기금 주식투자 비중도 40%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와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지난 7일 '전국사회보장기금 투자관리잠정방법'(잠정방법)을 개정해 '전국사회보장기금 경내투자관리방법'(관리방법) 입법예고안을 공개했다. 입법예고안의 관리방법에서 사회보장기금의 주식투자 한도를 40%로 규정했다. 재정부는 "사회보장기금의 투자 유연성을 높여 자본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사회보장기금은 국민연금 성격을 지닌 공적 연금이다. 상하이종합지수가 5일 3000선 밑으로 추락하는 등 주식시장 하락세가 이어지자 중국 정부가 사회보장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보장기금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2조 8835억 위안에 달한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