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티드카, 자율주행, PBV 등 산업과 시너지효과
자동차 외 방산, 의료, 심리 상담 등 다양한 적용처
생체 신호 감지 등 통해 건강 상태 확인, 사고 방지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는 A씨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기능을 키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크게 조작하지 않고 전방주시만 해도 되니 지루해졌다. 여기에 장거리 운전으로 축적된 피로에 휴게소에서 밥까지 먹고 나자 점차 눈이 감겨왔다.
#평소 지병을 있던 고령자 B씨는 교통량이 많은 시내 주행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급하게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119구급대에 전화를 걸기 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상황은 다르지만 두 사례 모두 같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주행 중 빈번하게 행해지는 졸음운전부터 예기치 못한 긴급상황 등으로 대형사고가 벌어지리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 세상에서 두 운전자는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가 운전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차량 시스템에 연동해 안전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스마트카로 진화하면서 이전에 없던 ‘차량용 헬스케어’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PBV(목적기반차량) 등 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자동차 외 다양한 산업에도 적용돼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부품사들은 차량용 헬스케어 기술을 개발하고 미래먹거리사업으로서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미 기술을 적용한 신차들을 선보이며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품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선두주자 역할을 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이미 차량용 헬스케어 기술을 자동차 뿐만 아니라 방산 분야까지 발을 들였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적용처를 발굴해 영역을 넓힐 방침이다.
현대모비스는 2021년 세계 최초로 운전자의 자세와 심박, 뇌파 등 생체신호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통합제어기 ‘스마트캐빈 제어기’를 개발했다. 지난 27일 이 기술로 멀미저감을 목적으로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에 탑재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또 음주 여부를 감지해 주행을 원천 차단하고 더 나아가서는 ‘움직이는 건강검진센터’ 역할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뇌파를 분석해 피곤, 졸음, 부주의 등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 ‘엠브레인’도 공개했다. 2021년부터 1년 간 시범 사업 차원에서 일부 경기도 공공버스에 도입한 결과, 운전 부주의 발생 빈도가 25.3%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해당 성과 토대로 매년 기술 적용된 버스 보급량을 늘려갈 방침이다.
올해 1세대에 이어 나온 2세대 엠브레인 모델은 장거리 운전을 하는 상용차 운전자들에게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앞서 엠브레인을 아동 심리 상담에 활용하기도 했다. 엠브레인을 통해 아동의 심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보편적으로 상용화된 기술은 제네시스 G90 모델의 ‘에르고 릴렉싱 시트’로 예시를 들 수 있다. 이 시트는 공압시스템과 인체공학적 설계를 통해 운전자의 바르고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준다. 독일 척추건강협회와 의학 전문가의 인증을 받은 마사지 모드도 탑재돼 있다.
해당 제품은 또 다른 부품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의 작품이다. 현대트랜시스는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한 헬스케어 기술들을 지속 개발하고 있다. 호흡이나 맥박을 확인하는 ‘생체 신호 측정 기술’, 체형을 인식하는 ‘체압 분포 모니터링 기술’ 등으로 위급상황을 사전에 막거나 건강 개선점을 제시한다.
그룹 차원에서도 압력으로 생체 신호를 파악하는 ‘압력 감응형 소재’를 개발하며 사업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이 소재는 센서 없이도 체압을 감지하고 접촉된 신체 부분에서만 발열이 발생해 에너지효율을 높여준다. 현대차그룹은 이 기술을 자동차 시트에 적용해 보다 정확하게 탑승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구현할 예정이다.
딥러닝 학습이 된 카메라를 활용한 졸음운전 방지 시스템도 연구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운전자 상태를 파악해 잠을 깨우거나 차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입차 브랜드들도 관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거나 상용화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내년 1월 국내 공식 출시되는 ‘더 뉴 E-클래스’에 멀미 증상을 완화하는 ‘에너자이징 컴포트’를 처음으로 탑재한다. 토요타도 차량용 헬스케어 기술의 국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포드가 운전자의 블랙아웃 상황에서 심전도 센서로 차량을 제어하는 기술을 탑재한 차량을 미국에서 출시한 바 있다. BMW는 아직 상용화된 모델은 없지만 스티어링 휠의 심박 측정 센서로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건강관리 분야까지 손을 뻗은 이유는 미래에는 자동차가 더이상 이동수단으로만 이용되지 않아서다. 자동차는 자율주행의 발달로 운전자로서의 역할은 축소되고 생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동 외 머무는 시간도 늘어나고 다른 웨어러블 기기보다 신체와 접촉하는 부분이 많아 폭넓은 측정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건강관리 시스템 구현에 좋은 조건이다.
교통사고와 같은 단발적 위험 요소 제거 뿐만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커넥티드카를 통해 병원으로 전달해 만성·급성질환 등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편, 차량용 헬스케어 기술 중 멀미 저감 기술은 전동화 시대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점쳐진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전기차가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제로백이 빠르고 회생제동도 있어 선호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특유의 급격한 속도 변화가 멀미를 더욱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어 “최근 꿀렁거림이나 멀미를 저감하는 신기술 연구도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