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성장 겨우 피했지만 불안한 수출
남은 하반기, 성장·물가동향 주시해야
상고하저(上高下低) 기대와 달리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잇달아 나온다. 내수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항에서 국제 정세에 따라 좌우되는 수출만으로 성장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KDI‘경제동향 10월호’에 따르면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으나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KDI의 내수 둔화·부진 진단은 지난해 12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KDI 판단과 달리 정부는 여전히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과 정책 당국 사이 견해차가 크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수출·제조업 중심 경기회복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지수는 114.65(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1.6% 상승했다. 물가는 어느 정도 잡히는 모습이지만, 가계 부채는 리스크(위험) 요인으로 부각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1일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하를 결정하면서 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을 완화 쪽으로 선회했다. 다만 서울 등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 등 금융 불안의 불씨가 남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간담회에서 금리인하에 신중한 배경에 대해 “이번(10월) 0.25%p 인하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등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미국 대선이나 지정학적 사건들의 영향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35조7000억원으로 8월 말보다 5조7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이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대였던 8월(9조3000억원)보다 38.7% 줄었다.
가계대출뿐만 아니라 주택 거래와 집값 추이 등으로 가계부채나 부동산 시장의 추세적 안정을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직전분기대비·속보치)이 0.1%로 집계된 상황에서 향후 경기 흐름에 우려가 커진 상황도 문제다.
이처럼 경제 전반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그에 따른 정책 대전환이 요구된다.
앞서 정부는 우리 경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장단기 정책 과제와 방안을 담아낸 ‘역동경제 로드맵’과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지난 7월 발표했다.
전반적인 사회 부문에 대한 정책은 짜임새 있게 구성됐으나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재정 대책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국가채무(중앙정부 채무) 잔액은 전월보다 8조원 증가한 1167조3000억원이다. 국가채무 비율은 치솟고 있는데 취약한 재정 기반에 대한 해법이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은 것은 아쉬운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역동경제는 기재부의 핵심 의제”라며 “녹록하지 않는 현실에도 남은 4분기 경제 활력을 위해서라면 다각적 고민을 넘어서 실제로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 대선 후보자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거시경제, 무역, 통상, 금융 등 분야별로 조율이 필요한 정책을 살펴보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지원 방안과 기업 성장 사다리 등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