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의 2차 침입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마지막 격전의 주인공이 바로 양규였다. 요즘 극장가에서 사랑 받고 있는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퇴각하려는 적들을 무찌르는 것처럼 양규도 퇴각하는 거란군을 끝까지 괴롭혔다.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고 공포를 심어줘야 향후 다시 침입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규에겐 또 다른 실질적인 목표도 있었다. 고려인 포로들의 해방이다. 요즘도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전통시대엔 더욱 인구가 국력이었다. 인구는 노동력과 전투력, 그리고 세수의 기반으로 나라의 근간이었다. 거란은 수많은 고려인을 포로로 끌고 가려 했는데 양규가 그들을 해방시켰다. 이것은 고려의 국력을 보존해 거란과 계속 맞서 싸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 양규의 마지막 싸움 모습이 ‘고려거란전쟁’에서 방영돼 안방극장에 큰 감동을 안겼다. 우리나라의 역대 영상 콘텐츠 속 장수의 전사 장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고 할 정도다.
‘고려거란전쟁’은 대규모 전투 오프닝으로 시작돼 지금까지와는 다른 본격적인 전투장면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게 했다. 흥화진 전투 오프닝에서 그전까지 볼 수 없었던 투석기 공성 장면이 등장해 더욱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그 후의 전개에선 전투 장면이 너무나 초라해, 기존 우리 드라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큰 실망을 안겼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상은 결국 돈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제작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투 장면이 구현될 수 없다. 그렇다보니 양규의 영웅적인 분투가 상당 부분 축약된 형태로 그려졌다.
그러다 마지막 전투 장면만은 물량을 투입해 힘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선택과 집중으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한 전범이라 할 만하다. 처절하고 감동적인 양규의 전사 장면으로 극의 감동과 가치를 순식간에 극대화했다. 추정컨대 앞으로 귀주대첩 때 다시 한번 물량 투입이 이루어질 것 같다. 양규 전사 장면과 귀주대첩에 제작비를 집중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귀주대첩이 기대되는 이유다.
양규는 역사 마니아들에겐 익숙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역사 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도 황진 등 여러 영웅들이 등장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영웅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니 우리 민족사가 쪼그라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양규가 조명된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아주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양규는 3000여 병력으로 40만 거란군을 흥화진에서 막아내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보급기지도 갖지 못하게 했다. 거란군이 곽주를 점령해 후방 기지로 삼았는데, 양규가 불과 1700 명의 결사대로 곽주성을 탈환했다. 이로 인해 거란군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싸우게 됐고 결국 소득 없는 철군을 결정하고 말았다.
양규는 김숙흥과 더불어 거란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1만명 이상의 수급을 베고 포로 3만명 이상을 해방시킨 후 김숙흥과 함께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고 한다. 제작비 문제 때문에 그 전투들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양규는 기병을 신출귀몰 운용하며 활을 썼을 것으로 보이는데, 드라마 속에선 보병 한 소대 정도가 백병전 치르는 수준으로만 그려졌다.
그래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지막 전투 묘사는 압권이었다. 전장에서 적군과 뒤엉켜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갑옷의 기능을 생생하게 묘사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양규와 김숙흥의 군인정신이 안방극장에 큰 울림을 남겼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고려거란전쟁’은 역대급 성취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시청자의 큰 호응이 있어야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