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내연녀로부터 차명계좌 통해 5억 수수 혐의…법원 "청탁금지법 위반 무죄"
법조계 "직무관련성 관계없이 1회 100만원 초과해 받으면 안 되지만…친족끼리는 가능"
"내연녀, 친족은 아니지만 준한다고 볼 여지…도덕적 비난가능성 있지만 법적 허용"
"대법의 다수 판례, '사실혼 관계' 친족으로 안 보는 경향…상고심서 파기환송될 가능성"
장모 등의 통장으로 내연녀로부터 수억원을 송금받아 쓴 공무원이 법원에서 청탁금지법 무죄 판단을 받았다. 법조계에선 공무원은 직무 관련이 없는 자에게도 1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안 되지만 친족에게는 받을 수 있고 사실혼 관계인 내연녀는 이에 준한다고 볼 수 있기에 무죄 판단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대법원이 여러 판례에서 사실혼 관계가 친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는 만큼 상고심에서 파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항소4부(구창모 부장판사)는 최근 부정청탁·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과 금융 실명거래·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57) 씨에게 청탁금지법 위반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간부급 공무원인 A 씨는 장모 등 통장으로 2017년 6월 중순부터 같은 해 말까지 내연녀에게서 5억1000만원 상당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은 "공직자로서 내연녀로부터 거액을 받아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사실혼 관계에 있고 앞으로 혼인하기로 약속한 점을 고려했다"며 벌금 40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내연녀와 사실혼 관계이므로 청탁금지법 위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항소했고 ‘애정 관계’ 여부가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은 "피고인의 중혼적 관계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내연녀로부터 지급받은 돈은 순수한 애정 관계에 기반한 것으로 법률혼 관계에서 이뤄지는 금품 수수와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며 청탁금지법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며 "제8조에 따르면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증여 등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공직자등의 친족이 제공하는 금품은 청탁금지법에서 수수를 금지하는 금품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연녀는 친족에 해당하지 않지만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내연녀로부터 받은 돈은 비난가능성과 별개로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해당 판결은 법률 문언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보다 구체적 타당성을 확인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부연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서 주고 받은 금원에까지 청탁금지법이 적용된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며 "처벌규정에서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게 되면 피고인에 대한 가벌성의 범위를 넓히게 되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안의 경우 2심은 두 사람의 관계가 도의적으로 비난받아야하는 관계일 뿐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청탁금지법이 적용되어야 할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가람 변호사(법무법인 굿플랜)는 "개인의 사적인 관계가 어느 정도 공고한 관계로 이르렀다고 봐서 결국 업무 관련성은 없다고 판단해 청탁금지법 무죄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직무와 관련없는 사람과 1회 100만원 넘는 돈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기소하지는 않는다. 이 경우 친구, 지인 등과 계좌로 돈을 주고받을 수도 없고 부동산, 주택거래도 힘들어질 수 있고 결국 사적인 침해가 될 수 있어서다"고 전했다.
김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현림)는 "대법원에는 증거인멸, 범인도피죄 등에 대해서 사실혼 관계는 친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으며 그에 맞춰 지방법원도 같은 취지로 최근까지 판시하고 있다"며 "이 같은 기존 판례와 완전히 배치되는 판시이기 때문에 만약 상고심이 이뤄진다면 대법에서 파기 환송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