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잠재성장률 2040년 0.7%까지 하락
한은, 저성장 국면 시사
경제연구원,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버블 경제(거품)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초입과 닮았다는 경고등이 울린다.
일본은 한 때 세계 2위 경제 대국을 누리며 호황기를 맞았다. 하지만 저출산, 고용문제, 임금인상, 저출산을 겪으며 수십 년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일본보다 뒤처지자,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걷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경제 강국 日, 버블 경제 타격에 30년간 ‘장기 침체’
세계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뤄 세계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이후 1968년 세계 경제 순위 2위를 차지하며 경제대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평가절상하자, 일본은 1986년부터 5년간 부동산과 주가가 크게 부풀려진 버블 경제를 맞게 됐다. 저금리로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은 기업과 개인은 일본을 넘어 해외까지 부동산 투기에 눈을 돌렸다. 당시 일본은 전례 없는 호황기를 누리며 이 상황이 지속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후, 시중은행이 무리하게 빌려준 돈은 1993년 약 13조엔이라는 막대한 부실 채권으로 돌아왔다.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 후 초기 대응으로 건설경기 붐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저출산 구조와 맞물려 과잉 건설 투자로 이어졌다. 궁극적으로는 지방 경제 파산 부작용을 낳았다.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다.
여전히 일본은 버블 붕괴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4분기 마이너스(-) 0.4% 성장을 기록하면서 시장이 전망한 1.4%보다 한참 밑도는 수준을 보였다.
일본의 명목 GDP도 4조 2100억 달러로 독일(4조 4600달러)보다 적었다. 한동안 세계 3위 경제 대국 자리를 지켜온 일본이 1968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 자리를 내주며 4위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일본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으로는 민간 소비 위축이 가장 컸다. 일본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85%다. 내수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민간소비는 GDP의 55%를 차지한다. 그런 민간소비 성장세가 지난해 4분기에는 직전 분기보다 0.2% 꺾이면서 일본 경제는 내상을 입었다. 자본 지출마저 전 분기보다 0.1% 쪼그라들어 충격을 더했다.
앞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세계 첫 양적완화, 아베노믹스 등 일본 당국의 정책이 실패한 탓이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 임금인상, 고용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아 앞으로도 경제 침체 국면에 들어설 전망이다.
오학수 박사가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 발간한 논문을 보면 버블 붕괴 후 장기불황, 저출산·고령화는 일본의 고용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 박사는 “1980년대 후반에 실물경제와 괴리돼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거품경제가 1991년에 붕괴한 후, 장기불황은 지속됐다”며 “이 때문에 1991년 건설공사수주액 감소, 1997년 기계수주액 감소, 1995년 소비자물가 저하, 1998년 GDP 감소, 1인당 국민소득 감소, 노동자 소득 감소 등을 초래했다”고 했다.
특히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가 대표적인 현상”이라며 “기업이 인건비 절약, 생산량 변동에 대한 유연한 고용조정 등을 위해 파트타임근로자 등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해 그 비율의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인구 고령화와 관련 “일본의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12.0%에서 매년 상승하여 2015년에 26.7%를 기록했고, 앞으로도 계속 높아져 2060년에는 39.9%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내다봤다.
韓 장기 저성장 진입했나...‘저출산·고령화’가 관건
이러한 일본의 역사가 현재 우리나라 경제와 매우 유사하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5년 만에 일본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 GDP 성장률은 1.4%로, 이는 일본보다 0.5%포인트(p) 밑도는 수준이다. 전년보다 민간소비(1.8%), 정부소비(1.3%), 수출(2.8%)과 수입(3.0%) 증가 폭이 모두 줄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21년 4.3%, 2022년 2.6%에 이어 3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해인 2020년(-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래 최저 성장률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주된 원인으로는 민간 소비 증가세 둔화로 꼽힌다. 민간소비는 지난해 1.8% 성장, 2022년 4.1% 증가 폭의 절반 수준을 보였다.
올해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보다 증가해, 내년 GDP는 한국이 일본을 역전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일본과 우리나라 내수 시장 규모와 견고함의 차이다. 일본이 30년간 버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아 미·중 무역 갈등,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위험 요인) 등을 외면하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을 2.3%, 일본은 0.9%로 각각 전망한 바 있다. 세계 경제 호전에 따라 한국의 성장세가 회복하는 반면, 일본은 엔화 약세 국면이 마무리되며 주춤할 것이란 예상이 반영됐다.
이러한 수치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적으로 장기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느냐가 관건이다. 문제는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인구감소가 장기 저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지난 15일 ‘저출산·고령화의 성장 제약 완화를 위한 생산성 향상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2000년대 4.7% 수준을 유지하던 국내 경제 잠재성장률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지난해 1%대로 떨어졌다. 이러한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계속된다면 노동 성장 기여가 급격히 줄어 2040년에는 0.7%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봤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보고서를 통해 “현재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3%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46년에는 일본을 넘어 경제협력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큰 나라가 된다”고 밝혔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우리나라가 이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했다. 신 국장은 “일반적으로 연구기관들은 1%대 혹은 0%대까지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하고 있다”며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을 완화하거나 올리려면 인구 구조적 요인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급격한 고령화로 성장률 하락에 더해 노인 빈곤, 사회적 소득·소비 불평등 문제를 키울 수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질 측면의 일자리 양극화) 완화,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하향 안정, 수도권 집중 완화, 교육 과정 경쟁 완화 등 ‘구조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에 들어서게 된 한국경제는 가파른 물가급등과 이에 동반한 금리상승으로 인해 빠르게 마비상태”라며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조금이라도 낮춰보려 긴축정책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경기둔화에 따라 복지지출 등 민생안정에 대한 지출수요는 더욱 늘게 되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국민도 기업도 신뢰하지 못하는 겹겹이 규제에 대한 개혁정책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규제개혁을 통한 시장정상화 없이는 작금의 경제위기로 인한 장기불황을 피할 수 없음은 물론, 현재 한국경제의 처지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상황에 도달해 있음을 실존적으로 인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고물가에 내수·소비 쪼그라든 日…‘기업밸류업’ 초강수[경제 나침반③]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