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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자 나였던 '레오'와 이별하는 법 [D:쇼트 시네마(67)]


입력 2024.03.05 07:10 수정 2024.03.05 07:1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이덕찬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은애(박예영 분)는 첼로 유학을 떠났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오랜 만에 본 아버지는 경비복을 입고 있고 매번 오디션은 매번 낙방한다. 과거에는 천재 소리까지 듣던 유망주였지만 더 이상 자신이 계속 첼로를 연주하는 것이 맞는 건지 괴롭기만 하다.


은애의 귀국을 축하하기 위해 친척들과 저녁식사 자리. 여전히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친척들과 그 옆에서 수심이 깊어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은애의 마음은 까매진다.


더 이상 지원한 여력이 아빠에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은애는 첼로를 팔기로 결심한다. 결심은 했지만 자신의 전부였던 첼로를 판다는 일은 쉽지 않다.


중고거래로 첼로를 사겠다고 나온 남성은 하이킹 복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왔다. 첼로의 이름은 있는지, 주차장에서 첼로를 꺼내 확인해 달라느니 첼로에 대한 이해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유튜브로 은애의 연주를 본 건지, 한 번만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례한 부탁에 은애는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지만, 200만원을 더 준다는 말에 결국 연주를 시작한다.


은애의 연주를 감상한 남성은 팔지 말고 더 잘해보라는 호의의 말을 건네지만 결국 은애는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팔지 않겠다며 참아왔던 감정을 터뜨리고 만다.


은애는 정말 첼로를 팔지 않았을까. 집 앞까지 힘 없이 걸어온 은애의 손에는 첼로가 없다. 첼로는 하이킹 하는 남자의 뒤에 매달려 있다. 첼로의 이름은 '레오'다.


'레오'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꿈과 이별하는 이야기다. 십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하며 홀로 감내했을 시간 끝이 보상이 아닌, 이별이라니 은애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은애의 속도 모르고 자신의 딸도 은애의 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삼촌, 5000만원은 큰 돈이 아니라는 듯이 척척 내놓는 거래인 등이 있지만, 제일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건 현실 앞에 순응해야 하는 가난한 처지일 것이다.


모든 걸 바친 과거의 나를 떠나보내는 건 은애만의 일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은애와 같은 고민이나 딜레마를 거쳐간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앓는 사람들을 위한 감독의 섬세한 위로법이 은애의 연주와 함께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러닝타임 27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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